[카페★里仁] 말 참 잘하는 이웃나라 젠틀맨

[카페★里仁] 말 참 잘하는 이웃나라 젠틀맨

  • 장성미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6.21 08: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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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
안자

어느새 녹음이 짙게 드리우니 갖가지 연유로 이곳 저곳 모가 나있던 산의 모습이 짙푸른 초록에 감싸여 덮이고 눈을 시원스럽게 해주는 계절로 들어선다. 어김없이 자연은 언제나 제때를 따르며 모든 것을 품는 듯한 평화의 색으로 단장을 하고 누구나 와서 즐기라고 너른 마당을 펼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세상은 말, 말, 말이 어지럽게 춤추며 나라 안이나 밖이나 조용할 날이 없다.

시절이 이러니 품격있는 언행의 소유자로 공자(孔子)의 칭송을 받았던 한 사람이 절로 생각난다.

‘안평중은 사람들과 교제를 잘하였고, 오래 그를 사귀면서 존경하게 되는구나’(晏平仲善與人交안평중선여인교,久而敬之구이경지 /論語논어•公冶長공야장)라며 그의 됨됨이를 공자가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에 재능과 인품이 뛰어났던 재상(宰相) 안영(晏婴)이 바로 이 사람이다. 중국인들은 그를 안자(晏子)라고 칭하는데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세 군주를 50여 년 동안 섬겼던 식견(識見) 있는 정치가이며 유능한 외교가로 지혜로운 언변(言辯)의 소유자였다.

당시 혼란의 시기에 있던 중원 땅은 복잡미묘한 관계구조로 스스로 자기나라를 지켜내지 못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횡행(橫行) 하에 국가가 사라지는 지경에 처하는 불안한 세상이였다. 이러한 시대에 안자는 외교관이 되어 국제교류를 할 때 기지(機智)있는 말로 자기나라의 국격(國格)과 국위(國威)를 지켜냈다. 또한 외교사절로 갔을 때 절차상 자신에게 결례를 범하는 상황과 맞닥뜨려져도 그 난관을 타계하는 재치있는 말로 개인적인 존엄도 꿋꿋하게 지켜내었다. 그의 사람됨에 관한 이러한 일화는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이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안영의 언행록(言行錄) 《晏子春秋안자춘추》에 전해진다.

안자
안자

안자가 초(楚)나라에 외교사절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초나라의 왕은 그가 언변이 뛰어나고 지혜롭다는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하려 하였다.

마중하는 관리에게 체구도 작고 외모가 그리 준수하지 않은 그가 도착하면 궁궐의 대문이 아니라 개나 드나 들듯한 작은 곁문으로 입궁시키라고 지시하였다.

당도하여 이러한 대접을 받자 안자는 상대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개의 나라에 파견되면 개구멍으로 들어가지만, 지금 저는 초나라로 파견되었으니 이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합당치 않소” (使狗國者從狗門入사구국자종구문입,今臣使楚금신사초,不當從此門入부당종차문입. /《晏子春秋안자춘추•內雜下내잡하》)라고 단호한 말로 거절하니 초나라 관리는 다시 궁궐의 대문을 열어 그에게 예를 갖추어 마중 하였다.

초나라 왕이 다시 계책(計策)을 세워 제나라를 모욕하려고 안자에게 잔치자리를 마련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죄인 한 사람을 끌고 오게 하였다. 초나라 왕이 “끌려온 자의 죄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관리는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초나라 왕이 안자에게 “제나라 사람은 정말 도둑질을 잘하는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자가 “귤이 회남(淮南)에서 자라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자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橘生淮南귤생회남,則爲橘즉위귤,生於淮北생어회북,則爲枳즉위지. /《晏子春秋안자춘추•內雜下내잡하》)라고 말하며 귤과 탱자는 생긴 것이 비슷하지만 맛이 다른 이유는 기후와 풍토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안자는 또 덧붙여서 이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초나라에 오면서 이렇게 나쁜 짓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응수(應酬)하였다. 비열(卑劣)한 초나라 왕에게 식물도 주변의 환경에 의해 성질이 바뀌듯, 사람도 주위의 사람들과 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안자가 만약 자신을 마중 나온 방문국의 관리가 자신을 희롱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박차고 돌아서 왔거나, 모욕을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찌르는 막말로 응수 했다면 현장에서 분은 풀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외교관계는 어그러지고 제나라를 집어삼키려 기회를 엿보던 초나라는 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찾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말하며 자존감을 지켜내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또 초나라 왕의 비겁한 계책에도 굴하지 않고 대응하며 할 말을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완곡한 표현으로 소신껏 논리를 조목조목 펼쳤기에 외교적 위상에서 제나라의 권위가 폐해를 당하지 않았고 국익(國益)도 상실하지 않았다.

안자처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맞는 어휘를 잘 선택하여 소통(疏通)을 이끌어내는 능력자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이러한 품성과 지혜로움을 소유한 사람 이였기에 오래오래 교제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존경하게 되었을 것이다.

최근에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종종 장소와 때도 없이, 나이를 불문하고, 계층과 분야를 떠나서 온〮오프라인이나 각종 매체나 상관치 않고 그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세간(世間)에 유행어처럼 일단 ‘지르고 본다’. 이로 인해 누가 상처를 입든,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든 뒷 책임은 지지도 않고 감당할 생각도 없이 말을 내뱉는다. ‘너, 참 말 잘한다’는 칭송을 받기 위함인가?

농담이나 소소한 한담을 하는 분위기에서는 무겁거나 진지할 필요 없이 가벼운 말로 이런저런 표현을 하는 것은 흠이나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국면(局面)에 어울리게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로 인해 초래될 어떤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말재간으로 순간의 인기를 얻고 즐기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단편적인 개념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진지한 도구인 말로 세상에 순기능이 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말 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말 만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먹잇감 앞에서 으르렁대는 동물처럼 ‘나의 배’ 만을 채우기 위한 거칠고 무책임하고 경박한 막말은 거두어들이자.

세상을 향하여 무엇인가 말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향하여 또 말하고 싶을 때 좀더 고민도 해보고 역지사지(易地思之)도 해보고 어휘도 선별해서 말하자.

안자춘추
안자춘추

 


장성미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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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019-06-22 23:48:18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면 모두가 행복해지죠. 안자는 참 현명했네요. 좋은 기사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