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이야기] 초기기업은 사람과 팀을 보고 투자한다?
[스타트업 이야기] 초기기업은 사람과 팀을 보고 투자한다?
  • 정재호
  • 승인 2019.06.10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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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스타트업 투자 일을 막 시작하고, 업계 선배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들은 얘기가 “우리는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 였다. 일반론으로 경영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사람이 미래라는 얘기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논리적이고 치밀해야 할 스타트업 투자에서,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것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신규 사업 개발, M&A의 경험으로 생긴 땟물(?)이 채 빠지지 않았던 필자가, 그 가르침을 체득하는데 시행착오가 있었다.

출처 셔터스톡 [우리는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타트업 생태계가 갖춰지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투자 측면에서 보면 기업의 성장 단계별 전문 투자기관이 포진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필자가 활동하는 첫 투자 라운드인 엔젤투자, 액셀러레이터에서부터, 제품/서비스의 상용화를 돕는 시리즈 A 투자(통상, 10억원 이상 투자), 그리고 이후 사업이 점프 할 때 마다 일련의 투자(순서대로 시리즈 B, C…를 붙임) 단계에서 펀드를 확보한 벤처캐피탈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상장 직전 단계에서 투자(Pre-IPO: Initial Public Offering)하는 큰 펀드도 존재한다.

후속 단계로 갈수록, 기업의 경영 활동이 복잡해지고, 거액을 투자하는 만큼 위험 요소에 대해 더 정교하게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을 실사(진단)하는 과정인 Due Diligence(약어로 DD) 동안, 회계법인이 재무제표를 낱낱이 뜯어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법무법인이 주요 계약 및 관련 규정 준수 여부를 판단하고, 산업 전문가들이 영업 활동과 기술의 차별성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또한, 경영진의 역량 진단을 위한 인터뷰 및 업계 지인을 통해 레퍼런스 확인을 병행하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전략적 투자자로서 인수 합병을 주도할 때, 필자(칼럼니스트 본인) 역시 치밀한 Due Diligence를 수행하고 구체적인 중장기 시나리오를 그려내는 등, 투자 승인을 얻어내기 위한 보고서 작성에 골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후 이사회에 참여하며 경영을 함께 해도, 사업의 성공 여부는 쉽게 점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경영은 신의 영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반면, 이제 막 시제품 검증을 끝내고, 팀을 갖추고 첫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에게, 위와 같은 치밀한 Due Diligence 과정이 의미가 있을까?

[출처 셔터스톡] 철저한 검증단계를 거친다고 해도 성공하는 기업은 극소수다

재무제표는 “0” 또는 마이너스투성이고, 오히려 투자 직전에 팀 구성과 법인 설립을 도와 주고, 향후 전개될 각종 위험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이 초기 단계 투자자의 역할이다. 투자심의 필요에 의해, 향후 5년 정도의 재무 계획을 수립 하기도 하는데, 주요 가정 몇 개 바꾸면 춤을 추는 숫자, 스프레드시트와의 씨름이 허무할 따름이다. 이제 막 골목길에서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외발 자전거에게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의 네비게이션과 대시보드를 요청하는 격이랄까? 5년치 계획이 맞아 떨어지는 곳은 옛 소련 밖에 없다는 선배들의 우스개 소리가 사실이었고, 대기업 습성으로 검토했던 몇 건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초기기업 투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30여 건의 초기기업 투자를 해보고, 예상보다 잘 되는 기업(극소수다!), 예상보다는 안되고 있지만 고군분투 생존이 고마운 기업, 아쉽게도 이미 폐업한 기업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는 투자를 좀 더 잘하면 좋으련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사람과 팀을 보고 투자”하면 적어도 실패 확률은 낮출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초기 기업 IR(Investor Relations) 자료를 검토하면서,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제품 pilot test 결과, 초기 거점 고객 분석, 시장 예측, Business Model의 타당성을 보는 것은 당연하다. 스타트업 경영진과 사업의 큰 방향성에 대해 합의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지만, 세부 내용은 모두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염두 해야 한다. 검증된 큰 시장에서 안정된 제품으로 뛰어든다면 이미 스타트업이 아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시장, 고객, 또는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기존 경쟁사 제품의 부족함을 혁신으로 파고드는 스타트업에게, 앞으로의 일을 정확하게 예측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혹자는, 스타트업 경영을, 어렵게 구한 한 병의 연료를 채우고 이륙한 후, 고장 난 엔진을 수리하며 날아가는 비행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현금은 떨어지고, 도원결의 한 공동창업자는 퇴사하고, 큰 맘 먹고 채용한 직원들은 내 마음 같지가 않다. 규제의 왕국에서, 꿈을 펼치기도 전에 기관 출두를 경험하기도 한다. 큰 기업이 우리 사업을 카피했다고 격분하는 경우도 생긴다. 희망과 비전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으나, 하루하루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의 싸움이 시작 된 것이다.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사람과 팀을 보고 투자한다?” 결국, 험난한 여정을 버틸 의지가 있는지, 전쟁에서 이길 단 한 방의 무기가 있는지 여부이다. 의지는 창업자의 강한 문제 의식에서 나오고, 한 방의 무기는 팀의 경험 또는 기술에서 나온다. 투자 당시 수립한 중장기 경영 계획이 맞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초기 투자자는 없다. 힘들게 버텼지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현실, 10개의 투자 중 7~8개가 실패하는 상황도 흔한 일이다. 단, 투자의 실패는,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금 회수(M&A 또는 IPO)를 못한 것이지, 사업 자체가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 뜻하는 바를 이루는 팀도 있다. 필자의 투자 경험 중 가장 쓰라렸던 것은, 힘든 전쟁터에서 스타트업 스스로 무기 한 번 제대로 써보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였다.

출처 셔터스톡 [험난한 여정을 버텨낼 무기, 팀의 경험도 중요하다]

투자자가 사람을 본다는 것은, 셰르파가 되어 함께 오르기로 한 길, 나의 주인공이 정상에서 웃는 것을 돕겠다는 의미 아닐까? 그 과정이 아름다우면, 정상 정복 여부는 다음 문제인 것 같다. 적어도, 후배들에게 등산 루트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있고, 다시 도전하면 그 때는 웃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니까. 이것은 이성과 논리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결국, 사람이다.

 

Company B 파트너 정재호

필자소개 : 초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 고려대 경영대 스타트업연구원의 예비창업팀 육성 교수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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