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간판(看板)이란 말 언제부터 생겼나?

[신인섭 칼럼] 간판(看板)이란 말 언제부터 생겼나?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19.08.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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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원조가 옥외광고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동서의 구분 없으며 세계 어느 곳이든 가장 오랜 광고를 찾으면 반드시 옥외광고가 나온다.

로제타의 돌.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광경 및 이 돌에 새겨진 세 가지 언어(위로부터 상형문자, 민용 문자, 그리스어)
로제타의 돌.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광경 및 이 돌에 새겨진 세 가지 언어(위로부터 상형문자, 민용 문자, 그리스어)

1920년에 출판된 『광고의 역사와 발전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Advertising)』이란 미국 최초의 광고사 책에는 이집트의 로제타의 돌 (The Rosetta Stone)을 광고의 시조라고 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보다 오랜 광고물도 있다. 이 돌이 유명해진 것은 그것이 최초의 광고라는 이유보다 이 돌 연구에서 이집트의 상형문가 해독이 되어 이집트 도처에 있는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어 5000년 이집트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이집트 북부 삼각주에 있는 러시드(서양 이름 로제타)라는 곳에서 발견된 이 돌은 18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 지배를 위해 싸우다가 영국이 이겨 전리품으로 얻은 이집트 유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더욱 역설적인 것은 이집트 사람이 이집트의 역사 관련 사건을 이집트의 말인 상형문자로 적은 이집트에 있는 돌의 해석을 한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이두문자로 된 신라 향가를 맨 처음 풀이한 사람은 해방 전 경성(서울)제국대학 조선어학과 과장 소창진평(小倉進平. 오구라 신페이) 교수였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이제 우리말이 된 간판이란 말도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언제 어디에서 이런 말이 처음 나왔느냐는 아직 연구가 덜 되었으나, 1876년 강화조약과 함께 한국이 개항한 뒤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를 보면, 1909년 3월 3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서울 종로 어물전 7방 도서포 양칠상(魚物廛7房圖書舖洋漆商)에 있는 박우양(朴右陽)과 이응호(李應浩)가 낸 광고가 있다. (이 주소를 보면 아직도 옛날처럼 종로에는 판매하는 물건에 따라 지역을 나누어 장사하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 신문 1단, 본문 14줄 광고의 헤드라인은 한글로 “대한에 처음 광고요 상업에 긴요하오”라 되어 있고 광고 본문 14줄 가운데는 세 번 (옆줄 친 곳) 간판(看板)이라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20세기 초에 간판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광고 첫줄에 나오는 카피, “상업에 제일 긴요한 것은 차(此. 이) 간판이라”는 말은 풀이하기에 따라서는 아직 간판이란 말이 익숙한 말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생긴다.

간판은 이보다 7, 8년 앞서서 이미 1900년에도 있었다. 서울의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전차가 개통되고 전차가 등장할 때 벌써 전차 지붕에 담배 광고가 실려 있다. 또한 1903년 10월 28일 황성신문에는 미국 스탠더드(Standard) 석유회사의 솔표 석유광고가 있는데, 이 광고에도 솔표 석유 판매점에 간판이 게재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면 전차의 광고나 솔표석유의 간판을 무엇이라 불렀겠느냐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솔표 석유 광고에 그 시사가 나온다. 즉 그림에 있는 광고 가운데 솔표 판매점 표지를 설명하는 카피에 현판(懸板)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부분만을 한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2 유념하여 보시오.

차송표(此松票. 이 솔표)석유를 방매하는 점방에는 분명히 여좌(如左) 현판을 게시하는고로 차표를 보시고 매수하옵시오.

서울 종로 어물전에 있는 간판회사 광고. 1909년 3월 31일 대한매일신보 및 지붕에 광고가 있는 전차
서울 종로 어물전에 있는 간판회사 광고. 1909년 3월 31일 대한매일신보 및 지붕에 광고가 있는 전차

한일합병이 있은지 한 달 뒤 1910년 9월 29일에는 조선총독부 국문 기관지가 된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우리말 광고 부록 2 페이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30개사쯤 되는 광고 가운데 옥외광고회사가 들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일은 이 광고는 간판이라는 말 대신 광고판(廣告板)이란 말이 네번 반복되어 나오고 있다.

1910년 9월 29일 매일신보 부록(광고) 및 이 부록에 있는 간판 광고회사 광고 (확대)
1910년 9월 29일 매일신보 부록(광고) 및 이 부록에 있는 간판 광고회사 광고 (확대)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1910년까지도 아직 간판이라는 말이 정착되지 않았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이러나저러나 간판이란 말이 20세기 초에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현판이라는 말과 함께 광고판이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간판이라는 말이 일본으로부터 왔다는 증거가 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없다. 다만 간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문헌은 개항 이후인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러면 일본에서는 언제부터 간판이라는 말이 나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명확하지 않다. 1977년에 출판된 일본어 책 『강호간판도보(江戶看板圖譜)』 14 페이지에 의하면, 일본에서 간판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후반 이후이며 그 전에는 감판(鑑板)이라 불렀다 한다. 그리고 널리 퍼진 것은 에도시대(1603-1868), 흔히 도쿠가와 막부 시대라고 했다. 그리고 간판이란 말이 들어간 책이 나온 것은 1865년이었다. 2년 뒤에는 그림에 보는 『공상기예간판광고(工商技藝 看板考)』라는 소책자가 출판되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 간판이라는 말이 도입된 시대는 개항 이후에서 20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의 옥외광고 책 『강호간판도보(江戶看板圖譜)』 및 『공상기예간판고(工商技藝 看板考』 표지
일본의 옥외광고 책 『강호간판도보(江戶看板圖譜)』 및 『공상기예간판고(工商技藝 看板考』 표지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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