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으로 만드는 반전
게으름으로 만드는 반전
  • 박재항
  • 승인 2019.11.2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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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물학자는 개미 무리의 80퍼센트는 성실히 일하고 20퍼센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만 할 뿐 일은 하지 않으면서 게으름을 피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식량 공급자가 사라지거나 개미집이 파괴됐을 때 부지런한 개미들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오히려 게으름을 피우던 개미들이 미리 정찰해둔 새로운 식량 공급자로 무리를 인도했다. 게으른 개미들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온 개미 무리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새로운 시대의 권력-마이크로 파워>(천훙안 지음, 신노을 옮김, 미래의창 펴냄, 2018) 41쪽에서 인용했다. 위의 사실을 두고 '한 마리의 게으른 개미가 전체 개미 무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현상'으로 '게으른 개미 효과'라고 부른단다. 평상시야 농뗑이를 피우지만, 비정상의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다른 행동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 데는 열심히 주어진 틀 안에서만 성실히 보냈던 개미들보다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게으름을 피운 개미들이 확실히 나을 것이다. 그래서 위의 개미 연구를 소재로 한 ‘게으름뱅이 개미 존재 이유 있다’라는 제목의 한겨레신문 2016년 2월 17일자 기사에서는 이렇게 단언하여 전한다.

'개미 집단의 장기 존속을 위해 일하지 않는 개미가 일정 부분 존재할 필요가 있다.‘

구글에서 근무 시간의 20%는 업무와 직접 연관이 없는 다른 것들을 연구하고 시도하는 데 쓰도록 한다는 제도도 같은 맥락에서의 시도일 것이다.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기업 차원에서 신규 사업을 준비하는 것도 되고, 직원들은 개인으로서의 경쟁력을 키우며 더욱 80퍼센트의 시간은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감을 갖게 된다.

어쨌든 책상에 붙어 있어야만 공부한 것으로 쳐주고, 우등상보다 개근상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교육의 그늘에 묻혀 있는 한국 기업들에서 게으르기는 쉽지 않다. 일의 범위가 너무나도 좁게 규정이 되어 있다. 그 규정은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계속 세밀해져 간다. 규정이 정하지 못한 분야가 나오면 멍하게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창조력이 발휘되겠는가. 창조력은 고사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근면한 개미만 모인 집단은 모두가 지쳐 버려 집단 존속에 꼭 필요한 일의 뒷바라지 작업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미를 가지고 실제 연구를 수행한 교수는 이렇게 결론 지였다.

“일하지 않는 개미가 일정 정도 포함된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집단의 존속에 불가결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간 조직도 단기적인 효율이나 성과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론이 아니겠냐.”

모두가 '번아웃burn-out'되는 사회라면서, 번아웃되지 않으면 불성실하고 사회부적격자로 낙인찍어버리는 이 사회를 어찌할 것인가. 하루 종일 잠만 자든지 떠들면서도 교실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하는 아이들과, 토요일 회사에 나오야만 안심이 된다는 대기업의 몇몇 임원들 생각이 불쑥 났다. 이 게으른 개미 효과를 기술하는 부분을 <새로운 시대의 권력, 마이크로 파워>의 저자는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어떤 직원이 별로 하는 일은 없어 보이는데 월급만 많이 받는다면 덮어놓고 비난하기보다는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기 바란다. 관리자는 모범적인 직원에게만 주목할 것이아니라 한가하다 못해 종종 한심해 보이는 직원에게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게으른 개미의 잠재력을 지닌 그에게 자신의 능력과 창의력을 입증할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한 마리 게으른 개미의 능력은 분명 백 마리 부지런한 개미가 잃은 것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뛰어날 것이다.

-위의 책 45쪽-

어떤 면에서 우리는 애들과 직원들의 잃어버린 잠재력을 부지런함으로 메꾸려 몰아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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