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추기경이 만든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추기경이 만든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8.12.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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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베들레헴의 그날 밤처럼 오늘 저녁 이 서울에 오신다면, 바로 집도 절도 없는 몸이 된 여러분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1986년 12월 24일 김수환 추기경이 상계동에서 성탄 미사를 집전하며 한 강론 중 한 말씀이다. 그날의 미사는 급히 가설된 백열전등과 예식용 촛불에 의지하며, 천막 가림도 없는 상계동의 공터에서 열렸다. 상계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을 추진하던 정부와 건설 회사에 현실적인 이주비 등을 요구하며 당시 400여 명의 원래 상계동 주민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힘없는 농성 주민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철거 용역들이 들이닥치면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수녀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도움 요청을 하고, 그러면 다른 일을 보다가도 찾아가서 스스로 방패를 자청했다. 철거가 한창이던 그해 11월에는 두 번이나 상계동을 방문했었다. 추기경이 나타나면 무자비한 철거가 중지되었다.

성탄절에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는 추기경 집전의 성탄 미사를 그 철거 현장에서 열겠다고 하자, 철거 용역들이 성탄절 당일 낮에 들이닥쳤다. 미사를 드리려고 임시로 세운 천막을 쓰러트리고 불살라버렸다. 미사 전례 도구들도 가져갔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려고 구덩이까지 팠다. 미사를 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는 현지 수녀의 전갈에 김수환 추기경은 전례 도구를 직접 챙겨 가고, ‘어디 한 귀퉁이에서라도 미사를 봉헌’하겠다며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저녁 7시에 철거민들이 급하게 메운 맨땅에서 50여 명의 신자와 주민 30여 명, 위로 방문객 20여 명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강론 첫 부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오후 늦게 지금 이 자리에 쳐 있던 천만도 제거되고, 또 불살라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제가 온다는 것이 이곳 개발에 관계되는 분들을 더욱 자극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저 때문에 여러분이 더 고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참으로 착잡합니다. 그렇다면 용서하여주십시오.” 

추기경은 폭력까지 동원하여 강제 철거를 하고, 그날 바로 자신이 집전하려던 미사까지 방해하여 추운 날씨에 야외 땅바닥에 앉히고 세워 놓고 미사를 집전하게 만든 이들을 욕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문이 그들 ‘개발에 관계되는 분들’을 ‘자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 1990년부터 천주교가 행했던 ‘내 탓이오’ 캠페인이 불쑥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한국 천주교의 최고 성직자가 그 험한 곳을 찾아가서 오히려 용서를 빌고 있다. 진정 위대한 반전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말이 이어졌다. 예수를 이 땅에 다시 태어나게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방을 구하지 못하여 마굿간에서 태어나는 상황부터, 그 초라한 마굿간으로 동방박사가 찾아오는 것까지 신약성경의 시작은 반전의 연속이다. 다른 종교들도 그 시초에는 그런 반전 요소들이 나온다. 석가모니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고행의 길로 들어섰고, 무함마드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메디나로 피신하는 ‘헤지라(聖遷)’의 이력이 있다. 유교의 공자도 행색이 ‘상갓집 개(喪家之狗)’와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역경이 있어야, 반전이 더욱 빛난다. 모든 분들께 은총의 반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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