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것들 소통법] 나 多움으로 나다움을

[요즘것들 소통법] 나 多움으로 나다움을

  • 이효성
  • 승인 2021.07.09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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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지 않게 왜 이래?”……(울부짖으며)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것은 뭘까? 커피를 마시는 일부터 냉장고를 사는 일까지 ‘나답게 할 것’을 강요하는 세상인데, 내가 발견한 나다움은 MBTI가 INFJ라는 사실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다움을 찾는 노력은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인 내 동생처럼, 본캐는 하나인데 부캐는 여러 개인 시대가 되었으니까. 이제,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나다운 것이다.

 

아침엔 아이돌, 점심엔 아저씨, 저녁엔 본부장 

얼마 전, 전 세계 60억 포켓몬스터들이 기다린 아이돌이 컴백했다.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데뷔 5년차 보이그룹 매드몬스터가 주인공이다. 필터로 만든 것 같은 완벽한 비주얼과 오토튠 말고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보이스가 담긴 4집 타이틀곡 <내 루돌프>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그들은 지금 각종 방송과 광고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건 우리가 알던 개그맨의 이야기가 아니라, 99년생 메인보컬 탄과 00년생 메인 댄서 제이호의 이야기다. 옆자리에 앉은 후배가 '김갑생할머니김'을 줬다. 대기업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호창 씨의 명언 ‘양념으로 얼룩진 흰쌀밥을 감싸줄 수 있는 건 김 한 장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진짜 먹을 수 있는 김. 

어디서 받은 게 아니라 돈 주고 샀다고 했다. 당연히 가짜였던 김이 진짜가 됐고, 당연히 가짜였던 이호창 본부장은 실존하는 본부장이 됐다. 어? 정말 어딘가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회사가 있고, 또 어딘가 벨트 하나로 강도를 제압하는 이호창 본부장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늘 술톤의 얼굴을 하고, 귀 뒤를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며, 한사랑산악회 회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부회장이자 05학번 이즈 백 반유니의 아버지인 이택조. 어딘가 있을 법한 아저씨를 현실감 있게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진짜 현실에서 등산복을 팔고 트로트를 부르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 아저씨 안에도 이창호가 있다. 분명히 한 사람인데, 나이도 성격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세 사람이 됐다. 

심지어 모델료도 각기 다르다고 한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 속 배역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살아가는 인격체가 된 것이다. 이창호가 아침엔 제이호였다가 밤엔 이호창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세상이다.

 

부캐는 본캐를 춤추게 한다

'부캐'는 그저 연예인들의 것만은 아니다. 내가 아는 회사원 A는 유튜버이자 스마트스토어 주인이자 출판 경험이 있는 작가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생활도 더 즐거워 보인다. 불확실한 시대, 회사원이라는 본캐에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는 또 다른 부캐를 만드는 것이 직장인들의 로망이다. 혹은 지금의 본캐(직장인)보다 존재감 있는 부캐를 만들어 갈아타길 원하기도 한다. 직업적인 것 말고도 인격적으로 다양한 부캐를 가진 사람도 있다. 후배 B는 회사에 있을 때, 친구들과 있을 때, 어떤 모임에 갔을 때, SNS를 할 때 조금씩 다른 인격을 가지고 소통한다. 

TPO에 맞춰 옷을 갖추듯 캐릭터를 갖추는 것이다. 잠재적 거짓말쟁이나 콘셉트충이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과 다양한 삶을 위한 부캐다. 나에 대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서로에게 오픈하는 것, 그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요즘 사람들의 소통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부캐들을 위한 가상세계인 ‘세컨드라이프’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도 유행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인격체가 되어 먹고 놀고 집을 사고 옷도 사 입고 클럽도 가고 회사도 다니고 친구도 사귄다. 그 안에선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고, 가능성에 한계도 없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든 또 다른 나로 다시 살면 되니까.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살아가는 재미가 그 안에 있다.

이렇듯 부캐는 그저 본캐가 만든 또 다른 캐릭터가 아니다. 본캐를 더 부유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유롭게 하기도 하고, 하나의 인생을 여러 번 살게 하는 존재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아니야, 그것도 나야!”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짓궂었으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렜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

본캐와 부캐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됐다. 소설의 문장처럼 이런 나도, 저런 나도 모두 나다. 그것이 혼란스럽거나 쫓아가기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하나의 나로 사는 것보다 다양한 나로 사는 게 더 의미 있는 요즘이니까. 이런 변화된 삶의 방식은 우리를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세계와 마주하게 할 것이다.

 


이효성 대홍기획 카피라이터

※ 본 아티클은 한국광고산업협회 발간 <디애드> 칼럼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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