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신문의 날, 그리고 인권 선언의 날, 남녀 평등 선언의 날

[신인섭 칼럼] 신문의 날, 그리고 인권 선언의 날, 남녀 평등 선언의 날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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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는 1895년 12월, 그의 나이 32세 되는 해에 11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비록 미국에 귀화한 최초의 한국인이었으나, 그 11년은 순탄한 세월만은 아니었다. 

서재필 박사 사진과 독립신문 창간호 1면
서재필 박사 사진과 독립신문 창간호 1면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한국에는 1883년에 창간한 한성순보와 2년 뒤에 한성순보의 속간처럼 발행한 한성주보가 있었으므로 최초의 신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개 독립신문이 근대 한국의 첫 신문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현재까지 이 날을 기념하고 있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창간호는 한글 3면, 영문 1면이었다. 이름은 <독립신문>, 영어로는 "The Independent"였다. 어엿한 독립국가의 독립신문을 꿈꾸던 그의 생각이 엿보인다. 서재필 박사는 1884년 12월 4일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제도가 시작되는 우정총국 낙성식에서 일으킨 갑신정변 주모자의 한 사람이었다. 정변이 실패하여 일본을 경유 미국으로 망명할 때 그의 나이 20세였다.

1446년 10월 9일에 반포한 훈민정음에 기준으로 하면, 독립신문은 450년 동안 묻혀 있던 우리글로 신문을 발행했다. 순 한글이었다. 한글이란 말이 생긴 것은 뒤의 일이다. 창간할 무렵은 한문이 진서(眞書) 즉 진짜 글이고, 한글은 언문(諺文)이라 했는데 한글을 깔보는 표현이었다. 4월 7일 창간호 1면 셋째 단에 있는 글에는 그의 한글관이 잘 드러난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각국에서는 사람들이 남녀 무론하고 본국 군문을 먼저 배워 능통한 후에야 외국 글을 배우는 법인데... 조선 국문하고 한문하고 비교하여 보면 조선 국문이 한문보다 얼마나 나은 것이 무엇이고 하니 첫째는 배우기가 쉬우니 좋은 글이요 둘째는 이 글이 조선 글이니 조선 인민들이 알아서 백사를 한문 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귀천이 모두 보고 알아 보기가 쉬울 터이라...

이 글에도 나타나지만, 그의 다음 글은 빈부귀천, 남녀를 가리지 않는 인권선언이며, 남녀평등 선언이라 해도 잘못이 없을 내용이다.

한문 못 한다고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국문만 잘 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문만 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없는 사람보다 유식하고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

이어지는 글은 19세기 말 한국 세상을 발끈 뒤집을 듯한 내용이다. 120여 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한국을 생각하면 이 글이야말로 남녀평등 선인이다.

조선 부인네도 국문을 잘하고 각색 물정과 학문을 배워 소견이 높고 행실이 정직하면 무론 빈부귀 천 간에 그 부인이 한문은 잘 하고도 다른 것은 모르는 귀족 남자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

신문 경영자, 광고 홍보를 하는 사람들에게 독립신문은 또 다른 귀한 선례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창간호 첫 줄의 시작이 “광고”이다. 그리고 1899년 6월 2일 자 독립신문에는 광고를 증기에 비유한 광고 효과 해설문이 나와 있다. 빨간 줄 친 광고 해설문과 표로 만든 독립신문 광고 요금표에는 자주 많이 거래하는 손님에게 어떠한 혜택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광고량과 빈도 할인(Frequency & Volume Discount)제, 즉 체감(遞減)요금 제도이다. 신문과 거래하는 광고주와 매체가 보아야 할 표이다. 일본 신문은 광고주별로 감추어진 금액으로 이루어지는 광고료 제도의 잘못을 알고 3년에 걸친 연구, 논의 끝에 1960년대에 그 모순을 타파했다.

1899년 6월 2일 독립신문 광고 해설
표로 고친 독립신문 광고요금 (1899년 6월 2일)

우리는 어떤가?

이미 123년 전에 독립신문이 제시한 이 소중한 유산을 아직도 모르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

1446년에 반포한 한글로 신문을 냈으니, 훈민정음의 부활이다.

신문의 상하귀천을 따질 것 없이 물정을 알고 학식이 있으면 합당한 자리에서 일하게 한다니, 평등 인권선언이다.

남녀 가리지 말아야 한다니, 남녀평등 선언이다.

그리고 평등 의식은 누구나 같은 조건이면 상하귀천 없이 똑같이 거래한다는 광고료에도 나타나 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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