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광고는 사회의 거울

[신인섭 칼럼] 광고는 사회의 거울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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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광고 두 개가 있다.

옥호서림 모자 광고(위) 및 확대한 여성과 상표(아래)
옥호서림 모자 광고(위) 및 확대한 여성과 상표(아래)

하나는 옥호서림(玉虎書林), 이름으로는 책방 광고이다. 옥호란 옛날 무관이 갓에 달던 호랑이 모양의 구슬 장식이다. 1909년 7월 2일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실린 광고이니, 지금으로부터 113년 전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양장 차림의 여성이다. 확대한 그림에는 더욱 자세히 나타나는데 모자, 웃옷, 치마 특히 가죽 구두, 그리고 간판을 든 그림 등 모두 시대의 첨단을 걷는 차림이다. 양장점 광고는 없으나, 이 여성 차림으로 보아 여장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남성의 옷차림도 비슷하게 시대를 앞서가는 양복이다.

단발령이 내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양반의 상징인 상투는 사라졌다. 허전해진 머리를 가다듬을 모자가 등장했다. 책과 학용품을 다루는 책방에서 모자 장사를 하는 것은 아마도 개화기 상징인 서양 문물을 다루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모자는 세 가지 종류인데 두 가지 남성용 모자 그리고 영성용 한 가지 또한 신식 학생 모자이다. 값은 퍽 비싸서 350, 450, 550을 한문으로 섰는데 단위가 전(錢)일 것이므로 3원 50전, 4원 50전 따위일 것이다. 상표가 멋들어진데 영문으로 THE HEAVEN DOVE 하는 비둘기이다.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카피를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더듬더듬 보면 절기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알맞은 모자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한일합병 1년 전인 1909년의 한국 사회상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이미 상투 두루마기 시대는 갔음을 이 광고가 보여주고 있다.

※ 1910년 11월 29일 매일신보 광고 전단의 광고주 (우측 위부터) : 18개 상점

  1. 동흥서관
  2. 성인당. 약국
  3. 한양서시(書市). 책, 지물, 서화, 학교용품
  4. 청심보명단. 대형 신사복 차림. 약
  5. 윤흥은포
  6. 상흥 양복
  7. 한성서화
  8. 중앙서관. 통신판매
  9. 항흥상회. 연초 제조, 석판 인쇄
  10. 목욕탕, 이발관
  11. 사진관 (일본인)
  12. 공화당. 건재, 약국
  13. 양화점
  14. 시계 상점
  15. 영흥 동서양 잡품
  16. 광흥 상점. 안경
  17. 광신상회. 양화
  18. 천도교 상점

※ 18개 광고주 업종별 수 

  • 서점 5
  • 약국/방 3
  • 양복/양화 3
  • 은방 1
  • 목욕/이발 1
  • 사진관(일본인) 1
  • 시계 1
  • 안경 1
  • 기타 2

모자 광고가 게재된 지 1년 뒤 1910년 10월 29일 자 매일신보사(한일합방 이후 총독부 국문 기관지)에 부록으로 게재된 멋진 광고는 그야말로 1910년 한국 사회상을 보여 주는 축소판 그림과 글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창심보명단(淸心保命丹)이란 광고판을 든 신사 그림이다. 110년 전 한국 개화의 선봉 신사 차림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약 광고 밖에 그림이 있는 것은 아직 손목시계 이전인 회중시계, 양화, 도장, 상호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린 그림 따위이다. 광고에 게재된 상점은 모두 18개인데 업종별로 집계하면 9가지로서 서점이 5, 약국/양방과 양복, 양화가 각각 3씩 있다. 은방, 목욕/이발관, 사진관, 시계포, 안경, 기타가 있다. 개화의 물결은 18개 광고주 가운데 서점, 양복/양화, 사진관, 시계, 목욕/이발관 등 시대 변화의 상징 업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10년대 한국 사회상이 낱낱이 드러나 있는 것이 이러한 광고임을 알 수 있다. 개화기 1910년대 우리나라 광고는 사회상 연구의 가잔 신뢰할 수 있는 교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고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특히 주목할 일은 이미 그 무렵에 이런 광고를 18개 상점으로부터 모집해서 신문에 부록으로 게재할 만큼 광고업이 발달해 있었다는 흥미로운 일이다. 짐작건대 현대의 광고대행사인 이 회사 이름은 한성광고사(漢城廣告舍)였는데, 광고 우측 상단에 표시되어 있다. 한국 광고대행사의 역사에서 최초의 광고대행사라는 이름을 받아야 할 회사였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과 함께 광고대행업도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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