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영어를 못할 것이다는 편견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영어를 못할 것이다는 편견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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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시건 대학교
로라 후앙과 그의 저서 '엣지' (출처 미시건 대학교)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미국의 최고 명문 경영대학원 두 곳을 뽑으라면 대개 하버드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와튼 스쿨을 들 것이다. 그 두 곳의 교수를 거쳐서 지금은 노스이스턴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있는 아직 나이 50이 안 된 로라 후앙(Laura Huang)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의 부모는 타이완에서 미국으로 왔고, 로라 후앙은 미국에서 태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세대로 분류되고, 공식 교육을 미국에서 시작한 걸로 보인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수학, 독해, 영어 시험을 봤는데, 모두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단다. 그런데 담임교사는 그를 수학 영역의 영재 프로그램에 넣고, 독해와 영어는 그냥 일반 수업을 듣도록 했다. 영어는 그의 모국어가 아니므로 언어 관련 영재 프로그램에는 넣을 수가 없다는 말을 교사가 했다. 그런데 그는 수학보다 독해와 영어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말이다. 그의 이름이 아시아계라는 데서 온 선입견이 작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비슷한 경우가 대학에서도 생긴다.

로라 후앙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작문 수업에서 첫 번째 과제에서 F를 받았다고 한다. 교수에게 찾아가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능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란 말을 들었다. 다른 아시안 계통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걸 알았다. 모국어가 영어라고 생각하는데, 이름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고 지레짐작으로 불이익을 당한 로라 후앙은 아예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다’라는 걸 먼저 알리는 작전을 쓴다. 그래서 다음 과제에서는 ‘모국어가 영어는 아니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겪어온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해 온 일들을 표현했다.’(<엣지> 로라 후앙 지음, 이윤진 옮김, 세계사 펴냄, 2023, 103쪽) 그의 점수는 B-로 올랐다고 한다.

넷플릭스에서 2019년에 처음 방영했던 <American Factory>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자동차 유리를 제조하는 중국 기업이 미국의 옛 GM 공장을 개축하여 그들의 공장을 여는 과정을 취재하여 보여준 작품이다. 중국 기업이 완공식을 준비하며 플래카드를 붙였는데, 미국 경비원 하나가 영어를 잘못 썼다고 지적한다. 'MARCHING FORWARD TO BE WORLD LEADING AUTOMOTIVE GLASS PROVIDER'이란 문구였다. 'WORLD'에 어퍼스트로피 'S'를 붙여서 '세계의'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문법적으로 경비원의 지적은 옳다. 그런데 중국 기업이라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주재 시절에 좌담회 형식의 조사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슬로건들을 주고 어떠냐 물어봤다. 그냥 전자제품 만드는 기업이라고만 얘기했을 때는 이들이 내용과 관련된 것들을 지적했다. 예를 들면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객이 얻는 혜택이 나타나지 않았다’ 등등이다. 그런데 그 슬로건이 일본기업이라고 얘기를 하면 문법이나 표현이 이상하다고 얘기했다. 애플이 오랫동안 썼던 슬로건인 “Think different'를 일본이나 한국기업이 썼으면 문법이 어떠니 하면서 논란이 일었을 것이다. 아마 왜 ‘different'란 형용사는 올 수가 없다는 등 문법 따지면서 기업 내부에서 통과되지 못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중국 소재 법인에 근무하는 중국인 직원들과 인터뷰한 녹취 파일을 잘 아는 친구에게 맡겨서 번역한 적이 있다. 우리 본사의 친구가 출장을 나가서 물어보고 중국 법인에 있던 주재원들이 통역을 맡았었다. 번역을 맡은 친구가 작업을 끝낸 후에, 농담조로 그에게 ‘우리 주재원들 중국어 실력이 어떠냐’라고 물으니, 모두 아주 잘한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법인장님보다는 젊은 편인 직원 주재원들이 중국어를 더 잘해. 그런데 중국인 직원들은 법인장의 성조가 틀린 중국어는 딱딱 알아듣고 대답하는데, 자신과 비슷한 직급의 주재원 중국어는 성조가 훨씬 명료한데도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라고 불평하든지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거야.”

​‘어린지’라고 해야 미국인들은 알아듣는다는 어느 분의 말이 생각난다.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하겠다는 마음만 있었다면 비슷하게만 하면 통한다. 퉁명스럽게 알아 듣지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일수록, 그보다 힘 있는 이들의 말은 행간까지 파악하며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메시지의 창조자나 발신자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같은 문구라도 다른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나온다. ‘Manners maketh man’이라는 영화의 명대사를 약간 비틀어 표현하자면 ‘Positions make communications’라고나 할까.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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