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조용히 맥주 한 잔 나누기도 힘들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조용히 맥주 한 잔 나누기도 힘들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4.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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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애드에이지
출처 애드에이지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식사하셨습니까?” “밥 먹었냐?”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흔히 건네던 인사말 중의 하나였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오랜 친구와는 잠깐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는 “다음에는 식사 같이해”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조금 더 가깝거나 친밀한 경우라면 “소주 한잔하자”라는 말이 오갔다. 꼭 소주로만 한정 짓지 않고 ‘맥주’, ‘양주’를 언급하는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소주가 주류(酒類) 대표로 쓰였다.

외국, 특히 미국에서 한국의 ‘소주’와 같은 식으로 인사말에서 쓰이는 술은 ‘맥주’이다. 가볍게 마실 수 있으니, 그냥 맥주병이나 캔을 집어 들고 보이면서 “Beer?”라고 한 마디 건네는 걸로 함께 얘기하거나 자리하자는 의사가 충분히 전달된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맥주병이나 캔을 보이는 몸짓만으로도 신호는 서로 통했다. 하이네켄에서 5년 전에 진행했던 'Worlds Apart an Experiment(갈라진 세계의 실험)'에서 사회 의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던 사람들을 대화로 이끈 촉발제가 바로 맥주였다. 당시 하이네켄의 슬로건처럼 ‘Open Your World’, 세계를 여는 열쇠를 맥주가 제공해 줬다.

사람들 간의 얼굴을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맞대고 하는 접촉과 대화가 거의 끊겼던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맥주는 그래도 관계를 지탱하게 하며 대화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연결선이자 통로의 구실을 했다. 그런 다양한 모습과 상황들을 2021년 슈퍼볼 광고에 버드와이저, 버드 라이트를 대표 브랜드로 하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앤하이저부시가 담았다. 우리말로 하면 “맥주 한잔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Let’s grab a beer”라는 태그라인을 단 광고를 선보였다.

야외 결혼식을 거창하게 준비했다가 폭우로 하객들이 오지 못하고 덩그러니 둘만 남은 신랑과 신부, 해고 통지를 받고 짐을 싸서 나가는 직원과 살아남은 이, 거듭된 연주 연습에 몸도 마음도 진이 빠진 오케스트라 단원들, 악천후로 공항에 발이 묶인 이들이나 제설작업을 하는 사람들 등 곤경에 처하거나 어려운 상황을 뚫고 가는 이들이 같은 처지의 이에게 건네고 함께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의 이심전심의 소통 상징이 된다. 그런데 술 마시면 기분 좋았다가 주사를 부려 곤혹스럽게 하는 이들이 있듯이 항상 좋은 모습만 펼쳐지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말에 앤하이저부시의 버드 라이트는 딜런 멀베이니 (Dylan Mulvaney)라는 트랜스젠더와의 협업을 발표했다. 아역배우 출신의 멀베이니는 자신이 여성이 되는 성전환수술 1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일이라며 자기 얼굴이 새겨진 버드 라이트 캔을 선보이고, 경품 행사를 알렸다. 양성 체계가 신의 섭리임을 주장하는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예견한 바였다. 그런데 그 반발 강도와 확산 형세가 버드 라이트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거셌다. 관심이 쏠린다고 하니 보수 계열의 폭스(Fox)TV를 선봉으로 언론 매체들이 다투어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버드 라이트가 촉발한 불매운동으로 남부 지역의 앤하이저부시 협력업체들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고 있다는, 교묘한 엮어 때리기를 시현하고 있다. 3월에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허쉬(Hersey) 초콜릿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을 모델로 한 영상을 내보냈다가 당한 비슷한 경우를 연상시킨다. ‘버드(Bud)’라는 앤하이저부시의 브랜드 고객이 남성, 보수 성향의 미국인이 주요 층이니, 보이콧의 불길이 더욱 크게 타오를 수밖에 없다.

폭스 비즈니스 뉴스
폭스 비즈니스 뉴스

와중에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 같은 유탄을 맞은 브랜드도 나타났다. 미국 남부 테네시 주의 대표 주류인, 흔히 버번위스키의 대명사로 불리는 잭 다니엘스(Jack Daniels)이다. 2년 전 성 소수자들의 권리를 응원하며 포스터를 발행했는데, 그걸 이번 버드 라이트 사태에 물타기처럼 SNS에 올린 이가 있었다. 몇몇 이들에게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자신의 생애 40년간 잭 다니엘스를 즐겨 마셨다는 미국 남부의 백인 육체 노동자 남성을 가리키는 용어인 ‘redneck’의 전형적인 외모에 의상을 갖춰 입은 이는 가지고 있던 잭 다니엘스 기념품들을 집 밖으로 가지고 와서 버리는 퍼포먼스를 SNS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작게는 성 정체성을 기업이 소재로 할 때 야기되는 문제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세 가지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첫째,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둘째, 서로 타협하려는 분위기 없이 반응의 극렬함이 상승한다.

셋째, 언제라도 과거의 언행이 소환되어 다른 불씨가 된다.

반전의 지뢰나 구멍은 현재진행으로 계속 생성되고 있다. 완벽하게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어떤 태도로 맞이하고 대처할 것인가 먼저 마련해 두어야 한다. 본의 아니게 맥주가 불화의 원산지가 되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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