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슈퍼 마리오의 자동차 번호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슈퍼 마리오의 자동차 번호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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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D-FENS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자동차 번호판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번호판에 새겨진 단어이다. 숫자 세 자리 다음의 한 음절 한글과 다시 숫자 네 자리로 이루어진 조합 열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한국의 자동차 번호판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알파벳과 숫자, 특수문자 등을 섞어서 본인이 거의 만들어내는 수준으로 번호판을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에 맞춰 만들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숫자와 문자로 일방적으로 지정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행운의 숫자들이라고 간주하는 번호들이 있어서, 그런 숫자를 단 번호판들에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가 된다고도 한다. 얼마 전에 자동차를 바꾸면서 열 개의 선택지 중 끝자리가 집 전화번호와 같은 숫자들이 있는 게 외우기 쉬울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D-FENS’는 1993년에 나온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Falling Down>에서 주인공 차의 번호판에 쓰인 글자였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분한 주인공 윌리엄 포스터의 별명이기도 하다. 그는 국방에 기여하는 방위산업 부문의 엔지니어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착실하게 일했는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해고당했다. 성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으로서 생활한 그가 실직자가 되고, 처와 딸은 충격을 받은 그를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처와 딸을 찾아 나서야 할지, 구직 활동을 우선해야 할지 모르는 스트레스만 잔뜩 받은 상태에서 집으로 가던 그는 LA의 악명 높은 차량 정체 속에 빠진다. 자동차 에어컨디셔너까지 고장 나서 얼굴을 타고 땀이 흐르는데, 예의 없이 경적을 울려대고 끼어들기를 하면서 화를 돋우는 무리가 꼭 있기 마련이다. 인내가 극한에 달한 그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차를 버린 것이다.

평범한 40대 직장인이자 가장인 그에게 별명이기도 한 ‘defense’는 일자리였던 ‘국방’과 가정의 ‘수호’를 의미했다. 자동차 번호판으로까지 쓸 정도로 소중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그 두 가지를 모두 버리고 떠나는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동차 번호판이 쓰였다. 정체된 도로에서 그의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세상에 별놈이 다 있군’ 식의 표정을 지었던 형사가 있었다. 그는 퇴직하러, 곧 경찰 생활의 마지막 날을 맞으러 가는 중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설정이다. 은퇴를 앞둔 형사가 우연히 어느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는 전형이 펼쳐진다. 윌리엄 포스터가 이후 총기를 난사하는 범죄까지 저지르며 ‘defense’를 언급했다는 데서, 형사는 자신이 본 자동차 번호판을 기억해 낸다. 번호판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매드타임스에서도 소개한 지난 3월 10일 펼쳐진 마리오 작업화(Mario boots)의 실물(클릭)을 제작하여 공개하는 행사 영상은 뉴욕 맨해튼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오는 슈퍼마리오 업무용 차량으로 시작한다. 위쪽에는 ‘NEW YORK’라고 주(州)를 명기하고, 아래에는 ‘EMPIRE STATE’라고 뉴욕 주의 별명을 적고는, 중간에 ‘MARIO BRO’라고 써진 번호판을 보며 30년 전에 본 영화에서 나온 자동차 번호판을 떠올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MARIO’의 ‘A’가 알파벳이 아닌 숫자 ‘4’였다. 뒤의 ‘IO’도 알파벳이 아닌 숫자 ‘10’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3월을 뜻하는 ‘MARCH’를 줄일 때 흔히 쓰는 ‘MAR’과 알파벳 ‘IO’와 거의 같은 모양의 숫자 ‘10’을 합쳐 써서, 3월 10일을 슈퍼마리오의 팬들은 ‘MAR10 DAY’, 곧 ‘마리오의 날’이라고 하여 기념해왔다.

올해 ‘마리오의 날’은 2월의 슈퍼볼에 예고편 광고가 나간 ‘Super Mario Bros(슈퍼마리오 형제들)’의 4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실제 부츠 공개 및 전시로 달아올랐다. 그 부츠를 싣고 간 마리오 자동차의 번호판에 숫자가 ‘4’와 ‘10’이 들어갔다. 4월 10일이 개봉일인가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는 않고 4월 5일이 개봉일이라고 한다. 그래도 ‘A’를 비슷한 모양의 숫자 ‘4’로 바꾸며 어쨌든 4월 개봉을 알리는 소득이 있고, ‘옥에 티’를 찾아내는 것 같은 소소한 반전의 재미가 있었다. 반전은 작은 디테일에서 더욱 크게 나온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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