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도시로 간 처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도시로 간 처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3.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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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간 처녀' 포스터 (출처 TMDB)
'도시로 간 처녀' 포스터 (출처 TMDB)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1980년대 중반의 초봄이었다. 평일 대낮의 한가로운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발하여 시골 마을들을 달리는 시외버스에 서너 명 승객이 있었고, 들이닥치는 햇빛을 피해 나는 왼쪽 창가에 앉았다. 건너편 내리는 문 바로 뒤쪽 자리에 갓 스물이 넘었을 듯한 처녀가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딴에는 한껏 멋을 냈지만 뭔가 어색한 옷차림에 보따리가 몇 개 무릎 위와 의자 밑에 역시 불안하게 흩어져 있었고, 역시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의 핸드백 하나가 처녀의 두 손 사이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고 있었다.

버스가 저수지를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국사 시간에 배웠던 벽골제 같은 그런 저수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사전 공부도 하지 않았으니 모른 채 약간 색다른 풍경이 나타나니 졸려서 잠깐씩 감겼던 눈이 크게 떠졌다. 저수지 입구에서부터 처녀는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있지도 못했다. 처녀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면서 시선을 멀리멀리 두는데, 어느 순간 저수지 중간쯤에 미닫이 유리문이 있는 버려진 간이역 같은 가게가 있고, 그 앞에 색 바랜 버스 정류장 표지가 보였다. 표지판 앞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중학교나 다닐법한 소녀가 있었다. 창에 얼굴을 붙이다시피 한 처녀는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웃음과 울음이 함께 폭발하고 있었다. 표지판 가는 기둥을 잡고 있던 소녀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지고, 버스가 채 서기도 전에 소녀는 버스 문 앞에서 폴짝대고 있었다. 처녀는 소녀에게 손이 향했다가, 짐을 집어 들려 하고, 그러다가 백을 챙기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소녀가 버스 안으로 올라오다시피 하고 짐을 후다닥 가지고 내리면서 처녀는 마침내 버스에서 땅에 발을 딛고는 땅 위의 소녀와 얼싸안고 둘이 함께 폴짝폴짝 뛰었다. 그 몇 걸음 뒤에 어머니인 듯한 중년 아주머니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얼싸안고 껑충껑충 뛰어대는 두 처자를 보고 있었다. 그 미소 사이로 언뜻 수심 어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버스는 떠났고, 그 버스 안에서 한참 동안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세 모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계속 내 가슴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4월의 햇빛이 저수지 표면에 반사되어 버스 창을 때리는 가운데 먼지를 뒤로 하고 달리던 버스 안에서 그 세 모녀가 흩뿌려댈 이야기 한 마당을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 흐뭇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머니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간 수심이 떠올랐다. 분명 도회지로 일자리 찾아갔을 것 같은 그 처녀는 어쩌다가 평일에 시골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을까? 폴짝폴짝 뛰어대던 그 소녀는 언제까지 어머니 곁에 있을 것인가? 어머니 혼자서 돌아올지가 불분명한, 하나가 아닌 두 딸이 혹시 오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가족 전체, 아니면 젊은 자식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도시로 가는 게 지방의 가구에서 일상처럼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도시로 간 처녀>라는 영화가 1981년 12월에 개봉했다. 서울로 와서 버스 안내양이 된 시골 출신 세 처녀의 이야기를 60년대 신선한 감각의 소설로 혜성처럼 등장한 김승옥이 시나리오를 썼고,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들었던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요금을 빼돌린다는 ‘삥땅’을 잡는다며 안내양을 알몸 수색을 하고, 기사들이나 버스회사 직원들이 안내양을 성적으로 유린하면서 하루 18시간 이상의 혹사를 하고, 그런 가운데도 승객이나 기사와 사랑을 새겨가는 안내양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그렸다. 주인공 버스 안내양이 알몸 수색을 당하는 장면 위에 “순결한 몸에 손대지 마라”라는 큰 글씨가 새겨졌는데, 영화 포스터의 메인 그림과 카피였다. ‘애마부인’ 시리즈가 나오며 3S(sports, screen, sex)의 스크린과 섹스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 영화도 휩싸여 들어갔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의 가장 주요한 의도는 버스 안내양들이 겪고 있는 인권 유린과 참혹한 노동 현장의 모습을 고발하는 것이었으나, 3S라는 시대 트렌드 속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영화가 개봉하고 4일 뒤 버스 안내양들의 시위가 있었다. 버스 안내양들의 옷을 벗겨 돈을 벌려는 영화라며, 자신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항의로 150명이 버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노동법에 규정된 집회는 고사하고 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안내양들에게 영화에 대한 항의는 경찰들도 사용자들도 협조하는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결국 상영 8일 만에 영화는 상영을 중지했고, 6개월이 지나 버스 안내양들을 대표한다는 노동조합과 버스회사와의 협의로 몇몇 장면과 대사를 삭제한 후에 영화는 다시 상영되었다. 당연히 화제성은 떨어지고, 작가와 감독이 의도했던 인권 유린과 열악한 노동 현장을 고발한다는 영화의 원래 의도는 잊히고, 술집 접대부 대신 버스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성 신체 노출이 심한 상업 영화로만 인식되었다. 당연히 노출을 기대한 관객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고,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한국일보 1981년 12월 11일 자 '도시로 간 처녀 도중하차 사연' 기사 (출처 한국일보/다음)
한국일보 1981년 12월 11일 자 '도시로 간 처녀 도중하차 사연' 기사 (출처 한국일보/다음)

사회 약자를 돕기 위한 캠페인에 그 대상이 된 이들이 자신의 치부를 보인다고 분노하며 거부하는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 중고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무시당한다고 무료급식을 거부하고, 마을에서 구호 물품 준다면 화를 내는 가구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약자를 위한 복지라는 개념이나 정책 자체에까지 극렬하게 반대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편이 될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한다. <도시로 간 처녀>의 김수용 감독이 그런 소동을 겪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영화에 무슨 사회성이냐? 폭로 항변 메시지는 잠시 접어두고 좋은 세상 만날 때까지 사랑하고 정사하고 눈물 짜는 이야기나 찍자.”

그런 영화만 찍으면 ‘좋은 세상’ 절대 오지 않는다. 그리고 김수용 감독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검열 당국과 부딪치는 사회성 짙은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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