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좋은 노래도 두세 번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좋은 노래도 두세 번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3.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광고 관련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과 학기 시작하는 시간에 그들이 어린 시절에 봤던 광고 중 기억에 남는 광고, 자신 인생에 영향 준 광고 등을 뽑고 그 이유를 얘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일본인 유학생들이 셋 있는 수업에서 두 명의 학생이 같은 광고를 선정했다. 3월 11일이 끼어 있는 주간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 직후에 방영한 광고였다. 처음 한 학생이 첨부한 광고 영상만 봤을 때는 엉뚱한 동영상을 잘못 올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망자만 2만 명 이상이 나고,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다량 유출되는 상황에서 긴급 뉴스로만 방송 시간이 메워지는데, 그런 긴박하고 암울한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상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귀여운 어린이 캐릭터들이 웃는 얼굴로 나와서 인사말을 동요풍 음악을 배경으로 주고받는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교재로 어울릴 법한 맑고 발랄한 풍경이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폐허가 된 마을과 세상의 종말을 연상시키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연기 모락모락 나는 원자로 장면들 가운데 이런 광고 영상이 들어간다는 게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두 학생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광고로 뽑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했다. 분위기와 전혀 다른 광고 영상이 슬픔과 공포에 압도된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측면도 있었다. 일본 친구들은 '밝고 아이러니한 내용'을 담은 이 광고가 '평화로운 영상과 노래로 조금 마음 치료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대부분 기업이 광고 방영을 중지하면서 일본공공광고기구(Advertising Council Japan, 이하 ‘AC 재팬’)에서 만든 공익광고들이 뉴스 사이사이 전파를 탔다. 일본의 1,200개 유수 기업의 회비로 운영되는 AC 재팬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산하의 공익광고협의회처럼 공익광고들을 제작하고 방영하는 주체였다. 가끔 회원사들이 예정한 광고를 집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이 만들었던 공익광고들을 방영하곤 했다. 대지진 때는 그렇게 공익광고를 방영해야 할 시간이 너무 많았다. 초기에는 AC 재팬이 만든 다양한 공익광고들을 방영했는데, 질병이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광고들보다는 밝은 애니메이션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달래 주고 사기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린이 인사 교육 교재와 같은 광고를 반복해서 내보냈다.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는데, 이는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세계 종말의 기운까지 느껴지는 풍경과 소식들 중간에 나오는 이런 영상들이 반복되면서 앞뒤의 소식들이 자아내는 슬픔, 공포,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효과까지 가져온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또한, 광고 마지막에 AC 재팬을 알리는 고음 여성의 징글이 특히 귀에 거슬린다는 항의가 잇달았다. 처음 징글 부분만 삭제하고 광고를 내보냈으나, 결국 AC 재팬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광고를 중단했다고 한다. 그래도 처음의 그 기억이 얼마나 강했든지 한 일본 친구는 지금까지도 중독성 강했던 이 노래가 머리에서 맴돌면서 대지진 직후의 무섭고 슬펐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고 한다.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반전의 카드로 AC 재팬에서는 서로 인사하고 지내자는 밝고 귀여운 애니메이션 광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반전의 효과는 처음 그 카드를 내놓았을 때 80% 정도 발휘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형식을 잇달아 내놓으면 지겹기도 하면서 강요당한다고 느낄 수 있고, 결국 반감이 생긴다. 반전은 한 번으로 족하다. 두 번째부터 벌써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 그 한계효용은 지나치면 효용이 아닌 해악으로까지 변하기도 한다. 좋은 노래도 두세 번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