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여자가 있을 곳, 그리고 그 후속 싸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여자가 있을 곳, 그리고 그 후속 싸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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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올해 ‘세계 여성의 날’은 2020년대 들어 가장 조용히 지나갔다. 최소 한국에서는 그랬던 것 같다. 기업들이 집권층의 의지를 살핀다는 심증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이슈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워낙 많으니 부러 피하는 경향도 있다. 게다가 기사 내용을 읽지 않고 헤드라인의 굵은 활자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흥분하며 집단으로 반발하고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운동까지 바로 연결되기도 하니, 기업으로서는 아예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출처 애드위크
출처 애드위크

“여자들은 부엌에 있어야지(Women belong in the kitchen)”

영국 버거킹에서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에 올린 트윗의 포스터 사진에 써진 문구이다. 옛날에 여자들을 비하할 때 썼던 말 중의 하나인 ‘부엌데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때는 어린 남자아이를 두고도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들 하던 시절이었다. 과거를 연상시키는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문장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비난의 말들이 쏟아지고, 불매하자는 소리가 나오면서 버거킹 영국에서는 다음 날 트윗을 삭제했다. 그냥 하지는 않고 사과문 형식을 띤 트윗으로 약간의 변명을 했다.

‘말씀 잘 듣고 있습니다. 처음 트윗은 잘못했지요, 죄송합니다. 직업 요리사의 20%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바꾸려 요리 장학금을 준다는 얘기하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다음에 더 잘할게요. (We hear you. We got our initial tweet wrong and we’re sorry. Our aim was to draw attention to the fact that only 20% of professional chefs in UK kitchens are women and to help change that by awarding culinary scholarships. We will do better next time).’

사실 버거킹은 선한 의도를 처음 트윗부터 카피에 드러냈다. 큼지막한 부엌 운운한 문구 아래 작은 글씨로 ‘그런데 셰프의 20%만이 여성이다(Yet women make up only 20% of chefs).’라고 쓰여있다. 트윗 문장에서 의도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그런 잔글씨까지 신경을 쓰며 읽은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영국 버거킹 트윗에 쓴 문제의 카피를 같은 형식으로 뉴욕타임스 신문의 광고에도 실었으나, 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나간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첫째, 트위터와 같은 SNS 사용자와 종이 신문 독자의 차이. 큼지막한 헤드라인만 보고 흥분하는 경향이 트위터 사용자가 심하다. 종이 신문 독자는 상대적으로 꼼꼼하게 본문의 내용까지 읽는 비율이 높았을 것이다.

둘째, 시간상으로 영국에서 먼저 문제의 트윗을 날리고 소동이 벌어진 후에 뉴욕타임스 독자들은 신문에 실린 광고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영국 버거킹에서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까지 한 한 연후에 보게 된 이들도 많았을 게다.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충격이 덜할 수밖에 없다.

셋째, 버거킹을 공격한 이들에 대한 보수층의 공격이 미국에서 더 심하게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진보 쪽인 뉴욕타임스 독자들이 트럼프 옹호자들로 대표되는 마초주의자들의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비방에 공격을 자제하며, 보수층에게 빌미를 더 이상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했을 수 있다.

출처 애드위크
출처 애드위크

‘woke’라는 영어 단어는 ‘잠에서 깨다’, ‘눈을 뜨다’라는 ‘wake’의 과거형이다. 그런데 주로 미국에서 사회 동향이나 논란 이슈에 신경을 쓰면서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20세기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지나치게 사회나 정치권의 부당함에 불평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부정의 느낌이 더해졌다. 버거킹의 부엌 트윗에 흥분한 이들을 두고 ‘woke’라 지칭하면서 이런 말을 한 이를 보았다.

‘(깨어 있다고 자처하는) woke 무리들이 유머 감각이 전혀 없다는 증거야(Proof that the woke crowd has no sense of humour). … 페미니스트라는 이들은 유머를 알아채지 못하고 화만 낸다니까(Naturally the feminists didn't get it and went bananas).

‘go bananas’는 약간 속어답게 ‘뚜껑이 열리다’, ‘확 돌아버린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표현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버거킹에서 무리했는데, 전체 내용을 보지 않고 화부터 낸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확 반전시키며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을 공격하는 이도 대단하다. 한 문장만 주면 누구나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괴벨스처럼, 적대시하는 이들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라도 트집을 잡아 까댈 수 있다는 초식을 시현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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