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전으로 탄생한 새로운 예술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전으로 탄생한 새로운 예술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4.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We ❤️ NYC’가 ‘I❤️NY’을 대체하는 뉴욕시의 새 슬로건이라는 뉴스를 3월 20일 주에 봤다. 처음 뉴스의 제목만 보고는 어느 디자이너가 만우절(April Fools’ Day) 농담을 좀 당겨서 하는 줄 알았다. 제대로 뉴스를 클릭해서 보고, 새로운 슬로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까지 체크하면서 일과성 해프닝이 아닌 아주 진지하게 실행하는 모험에 가까운 마케팅 프로그램이란 사실임을 감지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I❤️NY’은 1977년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이 슬로건의 배경을 두고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당시의 뉴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말한다. 시 재정이 파탄이 나서 공무원들이 대거 해고되었는데 충원은 되지 않고, 외부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서 공공서비스가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쓰레기 수거가 되지 않아서, 길가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의 뉴욕 상황을 <Ladies and Gentlemen, The Bronx is Burning>이란 책이 아주 생생하게 알려준다.

‘여러분, 지금 브롱크스가 불타고 있습니다’라는 저 다급하게 들리는 문장은 1977년 10월 12일 뉴욕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2차전 경기를 중계하는 중에 나온 멘트로 알려져 있다. 요즘도 그렇듯이 중요한 경기를 중계할 때면 경기장과 근처 풍경을 공중에서 부감으로 잡아서 보여준다. 최근에는 드론이 쓰이지만, 당시는 헬리콥터를 탄 카메라맨이 약간은 위태롭게 헬기 문을 열고 브롱크스의 명물인 양키 스타디움 주위를 촬영하여 전달하고 있었다.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했던 당시 뉴욕시에서도 브롱크스는 할렘보다도 무서운 우범지대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월드 시리즈라는 뉴욕 시민들의 눈이 텔레비전 모니터에 쏠린 그날따라 유난하게 브롱크스 이곳저곳에서 불이 났다. 원래 뉴욕에서 10월에 밤이 되면 날이 차서 노숙자들이 빈 드럼통 같은 것을 가져다 불을 피워 몸을 녹여, 작은 모닥불들이 보이기는 했다. 그날은 빌딩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고 연기가 하늘을 덮는 큰불이 다섯 군데에서 일어났다. 포착된 화재 장면을 보면서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책 제목과 같은 멘트를 외쳤다고 하는데, 사실과는 다르다. 화재 장면을 흥분한 목소리로 전하기는 했지만, 딱 저렇게 멘트를 한 적은 없다. 다음 날 뉴욕의 한 신문에서 흥분한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멘트라며 따옴표를 붙여서 헤드라인으로 쓰면서 당시 뉴욕의 어지럽고 뒤숭숭한 상태를 표현하는 문구로 쓰였다. 거기에 2005년에 나온 책도 한몫했고, 2007년에 스포츠 채널인 ESPN에서 드라마로 방영하면서 저 멘트가 사실처럼 굳어졌다.

처음 뉴욕의 중고책방에서 <Ladies and Gentlemen, The Bronx is Burning>이란 책을 봤을 때, 표지의 사진이 그해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가 우승한 후의 난장판이 된 스타디움을 찍은 것인 줄은 알았다. 그런데 브롱크스가 불타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외침은 알리와 켄 노턴의 복싱 대결 3차전이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와중에 밖에서는 정전 사태가 벌어져서 브롱크스 일대에 방황과 약탈이 벌어지면서 나왔다고 알고 있었다. 시간 상으로도 알리와 켄 노턴의 3차전은 1976년 9월이었고, 폭동에 가까운 사태가 났던 뉴욕시 일대 정전은 1977년 7월 13일 밤에 시작되었다.

뉴욕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져서 뉴욕시 대부분 지역에 정전 사태가 벌어지자 바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특히 상점 약탈이 도시 전체에서 펼쳐졌다. 급히 군을 투입하여 약탈자와 방화자들을 체포했는데, 그 인원이 무려 3천 명을 넘겼다. 1977년 정전 후의 뉴욕은 바로 그 전해인 1976년 7월 28일 수십 만 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이 난 탕산 시와 비교가 되었다. 강압적인 반공 이데올로기 주입에 항의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의 탐욕과 혼란의 징표로 정전 후 뉴욕의 혼란을 얘기하며, 폐허 속에서도 서로 돕는 탕산 시의 모습을 찬양했다. 다른 이는 탕산 시민들은 차분한 모습이야말로 공산주의 체제가 얼마나 주민들을 강제로 조종하며 억누르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혼란과 폐허 속에서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기 쉽다고 했다. 1977년 대정전이 힙합(Hiphop)의 발흥을 가져왔다고 한다. 당시 전자 상점에서 턴테이블과 믹서들이 집중 도난당했는데, 그들 도구가 브롱크스 골목에서의 큰 파티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약탈한 기기들을 이용해서 스크래칭과 믹싱 기법을 선보이며 힙합 DJ들이 본격 등장했다고 한다. 정전이 만들어낸 반전이었다. 물론 정전이 아니더라도 스크래칭과 믹싱하는 DJ들과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는 대중화되었을 것이다. 그 시기가 조금 당겨지는데 정전이 일조했다.

‘We ❤️ NYC’라는 도시의 새로운 상징을 뉴욕 시민들과 브랜드 업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주일의 정전 기간을 거친 후에 풀어놓겠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