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ZERO의 범람을 피하는 법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ZERO의 범람을 피하는 법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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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멤버들의 개인 사진을 보고 그들이 속한 걸(girl)그룹이나 보이(boy)그룹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BTS까지는 반수 이상 이름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그룹은 미안하지만 한 명이라도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보이그룹 멤버들이 더욱 구분이 안 된다. 그나마 걸그룹 출신들은 예전에는 영화와 드라마,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나고, 요즘은 무엇보다 광고에 출연한 이들은 자주 보게 되어 소수지만 좀 익숙해진 이들이 있다. 대표가 여기 칼럼에서도 소개했던, 코카콜라 제로를 광고하고, 노래로도 내놓았던 뉴진스이다. 

코카콜라 제로 x 뉴진스
코카콜라 제로 x 뉴진스

“코카콜라 제로 광고를 다른 걸그룹도 하더라.” 50대의 어느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소식을 듣지 못해 좀 의아하게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당분을 제거하여 칼로리 제로라는 코카콜라 제로와 같은 특성을 강조하는 다른 음료의 광고를 두고 착각한 것이었다. 마침 그 광고에도 걸그룹들이 나와서, 당연히 그렇듯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제로를 외친다. 그 직후에 비슷한 연배의 한 남성은 그 광고를 보고 ‘제로네. 뉴진스야’라고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무엇이 그들의 이런 오인지를 초래했을까? 걸그룹에 대한 전반적 무관심과 그에 따른 너무나 얄팍한 지식, 노쇠해진 뇌기능의 일부로서 기억력의 감퇴 등의 그들 자신에 따른 원인을 떠나 외부적 요인을 따져보았다. 코카콜라 광고는 파워가 있다. 집행 물량도 많고, 워낙 오랫동안 친숙해진 브랜드이니, 다른 광고들보다 눈에 잘 띄고 강하게 각인되고, 이번처럼 다른 것들까지 자신으로 오인하게 하는 힘이 있다. 뉴진스의 인기 여파도 있다. 데뷔할 때부터 화제였던 뉴진스는 5월31일 '그래미 어워즈 5관왕'의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 라틴 팝 아티스트 카밀로, 미국 래퍼 제이아이디(J.I.D) 등 다섯 팀의 아티스트와 함께한 '비 후 유 아'(Be Who You Are)’ 신곡을 발표하는 등 글로벌 스타로서 자리를 굳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코카콜라 마케팅 담당자들이 코카콜라 브랜드는 노출을 최소화하고 뉴진스를 앞세운다고 할 정도이다. 코카콜라 제로로 몇몇 인사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킨 광고는 출연한 모델 걸그룹의 상대적 지명도와, 너무 비슷한 광고 포맷, 제품 속성과 소구 포인트 등이 혼란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겠다.

코크 스튜디오
코크 스튜디오

위 두 음료를 포함하여 최근 음료 광고는 제로의 전성시대이다. 주류(酒類) 시장에서 전에는 무알콜, 영어로는 ‘alcohol free’, ‘nonalcoholic’ 등으로 쓰던 걸 ‘제로’의 앞이나 뒤에 '알콜'을 붙인 형태로 대체하기도 한다. 지난달 D&AD 광고제 참관을 위해 영국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으로 기네스 맥주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품질관리 담당자들이 영국의 기네스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고 사이트에 올라온 술집으로 출동하여 품질 검사를 하고, 조언과 함께 지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네스 맥주를 좋아하는 팬이, 기네스를 규정에 맞춰 따르지 못하거나, 온도 관리를 잘못하는 등의 이유로 제맛을 내지 못하는 술집(bar) 이름을 올리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사이트에 신고된 술집 중 문제가 심각하면 기네스 직원이 출동하는 것이다.

그들이 맥주의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은 거품, 온도, 맛이라고 한다. 거품은 그 높이가 1.2~2센티미터 사이여야 하고, 온도는 따랐을 때 6~7도 사이여야 한다. 제대로 된 거품을 위하여 기네스는 따를 때의 각도와 시간을 세밀하게 규정했다. 45도 각도로 기울여 전용 잔의 70%를 채운 후 세우고, 천천히 나머지를 2센티미터 이하의 거품이 나도록 따른다. 그리고는 119.5초 동안 기다려 맥주와 거품이 완전히 분리된 후에 마신다. 기네스 맥주 캔 속에 들어 있어 ‘기네스 구슬’ 또는 플라스틱 볼이라고도 하는 ‘위젯’은 질소 가스를 머금고 있다가 뿜어서 역시 거품과 풍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맛은 객관적 수치로 평가하지 못하고, 사람이 직접 맛을 보고 평가한다.

유럽 술꾼들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와 그곳에서 태어난 맥주 기네스는 원산지와 브랜드의 이상적인 궁합을 보여준다. 그런 기네스에도 제로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무알콜 맥주 출시의 사회와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아일랜드 맥주 종가로서 기네스의 브랜드 자산을 지키는 기네스 제로를 4년 동안 개발하여 2021년 여름에 내놓았다. 아직은 초창기라 맥주 맛을 중시하는 기네스 충성 고객들의 인식의 벽을 넘어 정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단계 같다. 다큐멘터리에서 보건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구분하기 힘든 것 같기는 하다.

사실 2015년에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특성을 감안하여 ‘기네스 제로’라는 제품을 출시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꽤 성공했으나, 제조 공법부터 기네스의 맛을 제대로 내기는 힘들었다. 기네스 브랜드의 본질과 있을 수 있는 어긋남, 10년 전 시도의 실패를 지우고, 반전의 성공을 만들기 위한 장치를 살짝 마련했다. 바로 ‘0.0’이란 숫자를 ‘ZERO’ 대신 내세운 것이다. 캔을 보면 ‘0.0’이 크게 보이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ALCOHOL FREE’라고 대문자로 새겼다.

기네스 0.0
기네스 0.0

농심켈로그에서도 웰치스 제로의 샤인머스캣을 출시하면서, 캔이나 포장에는 ‘ZERO’를 썼지만, 광고에서는 ‘0’으로 표시하며, 발음이 같은 영어의 ‘young’를 연상케 하며, '0 & Rich’라는 관용구와 연결한다. ‘ZERO’의 물결에서 표현을 달리하여 차별화하는 반전의 시도로 읽힌다. 인식에서 앞선 상대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는 필사적인 노력으로도 볼 수 있겠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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