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지적재산권] 원곡의 가치는 높이는 응원가, 원곡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패러디

[사례로 본 지적재산권] 원곡의 가치는 높이는 응원가, 원곡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패러디

  • 윤혜진
  • 승인 2019.05.26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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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곡의 공통점은 뭘까요? 야구팬들은 금방 눈치 채셨을까요? 바로 응원가의 원곡입니다. 응원가는 보통 유명곡을 개사해서 만드는데요. KBO는 한 해에 약 4억원이 넘는 저작권료를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하여 저작권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곡의 저작권자들이 KBO의 마케팅 자회사인 KBPO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21명의 작사 및 작곡가들이 삼성라이온즈 및 서울히어로즈 야구단의 응원가가 자신들의 2차적저작물작성권, 동일성유지권 및 성명표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였지만, 패소했습니다.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새롭게 창작할 수 있는 권리로, 원저작물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개변 정도의 수준으로 창작했다면 원저작권자의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또한, 저작권에는 인격권이라는 특이한 권리가 있는데요. 원곡의 저작권자로부터 사용허락을 받았어도 종종 문제되는 것이, 바로 인격권에 해당하는 동일성유지권 및 성명표시권입니다.

저작물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아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은 경우,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우리 법원은 오탈자를 수정하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을 교정하는 정도를 넘어서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에 대한 수정, 추가, 삭제, 절단, 개변 등의 변경을 가하는 경우에는 동일성유지권 침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저작물의 성질이나 이용 형태에 비추어 부득이한 범위 내에서 변경이 이루어졌고, 저작물의 본질적인 변경이 아닌 이상, 이 정도의 변경은 허용됩니다. 성명표시권은 저작물 이용시 원저작자를 표시할 권리이고요.

이 사건에서 저작권자들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자신들의 곡을 응원가로 사용하면서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악곡 또는 가사를 일부 변경, 편곡 또는 개사함으로써 원곡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 감정이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명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법원의 이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음악저작물은 악곡과 가사가 결합한 저작물로서, 작곡가와 작사가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법원은 다음의 이유로 악곡 변경이 동일성유지권 및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1.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음역대를 좀 높게 하거나 박자템포를 빠르게 변경한 것은 일부를 다르게 한 정도에 불과하고, 통상적인 변경이다.
  2. 대중가요의 특성상 저작권자는 어느 정도의 변경 내지 수정을 예상하거나 감내할 필요가 있다.
  3. 응원가로 사용되는 곡들의 대다수가 유명한 곡들이어서, 관객들 입장에서는 응원가가 그 원곡 자체라고 혼동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가사 변경은 어떨까요? 원곡의 저작권자들은 악곡의 변경으로 작곡자의 권리가 침해됐다면, 작사가의 권리도 침해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악곡과 가사를 별개의 것으로 보았고요. 법원은 다음의 이유로 가사 변경 역시 동일성유지권 및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1. 구단들이 원고의 가사를 전부 새로운 가사로 변경하였다.
  2. 원고의 기존 가사와 응원가의 가사 사이에 유사한 문구조차 없다.
  3. 원고의 기존 가사와 응원가의 가사는 소재나 주제가 달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다.

성명표시권 침해 또한, 다음의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1. 원곡들은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동안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고 재정비하는 동안 사용되었는데, 그 시간이 매우 짧아, 저작권자들의 성명을 일일이 표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2. 야구선수가 등장할 때 전광판에 이름이 표시되기도 하나, 이는 선수가 등장하는 짧은 시간에 국한된 것이고, 전광판은 주로 현재 경기진행 상황을 안내하거나 현장을 중계하는데 사용된다.
  3. 야구응원문화의 특성상, 응원가가 갑자기 불리기도 한다.

법원은 응원가가 사용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였고, 저작권자들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응원가라는 것이 원곡을 알고 있어야 더 잘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원곡과 응원가를 오인할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응원가라는 것이 관객의 흥을 돋우고,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길 위한 것인데, 원곡의 가치나 이미지를 훼손할 정도로 개사를 할까 싶고요. 저작권자들이 바로 항소했다고 하니, 야구팬들이 아직 좋아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구단들이 저작권료를 차라리 새로운 응원가를 창작하는데 사용하면 어떨까요?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슈퍼맨 김상수 응원가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면, 새로운 곡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원곡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패러디입니다.

패러디라고 하면 원저작물을 어떻게 사용하든 허용된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저작물에 단순히 변형을 가한다고 해서 모두 패러디는 아니고, 원작의 비평 또는 풍자라는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또한 저작권법상 허용되는 패러디가 되기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원저작물과는 다른 기능을 해야 하며, 원작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동일성유지권 및 2차적저작물작성권의 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패러디에 관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음치 가수로 알려진 이재수와 음반제작사 우퍼기획은 서태지의 “컴백홈” 곡을 개사하여 “컴배콤” 이라는 곡을 만들고, 해당 가요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로 이용하였습니다. 이에 저작권자인 서태지는 음박제작사를 상대로 인격권 침해를 주장하면서 음반판매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이에 음반제작사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허락을 받았다고 항변하였고, 서태지는 협회에 개사에 대한 동의를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으며, 협회와의 신탁계약을 해지하고 협회를 탈퇴하기에 이릅니다. 이재수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서태지의 컴백홈 곡을 사용하면서 서태지의 모습을 흉내 낸 등장인물이 입에 밴드를 붙이고 등장하거나, 변기에 앉아 추한 행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음반제작사는 음치가 놀림 받는 사회현실이나 서태지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풍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기존의 저작물에 풍자나 비평 등으로 새로운 창작적 노력을 부가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유용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점으로 이른바 패러디가 허용되나, 이 사건 원곡에 나타나는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흉내 내어 단순한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뿐, 이 사건 원곡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부가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패러디로서 보호되는 것은 해당 저작물에 대한 비평이나 풍자인 경우라 할 것이고, 해당 저작물이 아닌 사회현실에 대한 것까지 패러디로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서태지의 인격을 모독하고 수치심을 느끼도록 했고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건 개사곡은 패러디로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서태지가 소송을 벌인 이유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저작권자가 곡을 위하여 쏟아낸 노력과 고통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창작물을 도용하여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에 일침을 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의 패러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로 실망했다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패러디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면, 한 유명가수가 자신의 곡이 선거송으로 사용되는 것을 거절한 것도 납득이 갑니다.

저작권에 인격권이라는 권리가 있는 이유를, 이제는 한번쯤 생각해 볼 때입니다. 다만, 인격권 침해 주장이 유명인의 과민 반응인지, 유명곡의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인지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윤혜진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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