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메타버스와 종이책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메타버스와 종이책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5.06.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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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여기 보이는 캐릭터가 너야. 마우스 움직이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물건이 사고 싶으면 가게에 들어갈 수 있어. 가게 매대가 나오고, 거기서 상품을 살 수 있지. 도서관도 있거든. 책들을 보고, 대출받을 수도 있어.”

이번 세기도 아닌 1998년에 IT 회사에 다니던 친구가 인터넷 세계 속의 가상 거리를 모니터로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눈으로 세는 것도 가능할 정도의 픽셀 덩어리 몇 개로 이루어진 그림들이었으나, 당시로서는 아주 신기했다. 세기가 바뀌고, 2003년에 린든랩이라는 회사에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가상 세계 웹을 열었다. 5년 전에 친구가 얘기했던 것들이 더 정교한 그림들로 만들어져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 역시 조악한 수준의 그래픽이었으나, 구조가 보다 치밀하고, 무엇보다 아주 자본주의적이었다.

2007년에 새로운 마케팅 동향과 관련한 강연에서 당시 모 경제연구소에 재직하시던 한 분이 세컨드 라이프를 소재로 얘기했다. 자신이 세컨드 라이프 계정을 가지고 있는 앞서가는 마케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새로운 마케팅 무대인 세컨드 라이프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충심으로 열변을 토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와서 생활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기업과 제품을 알릴 수 있고, 가상 세계의 매장이므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특히 새로운 상품에 대한 테스트에 아주 적합하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당시 세컨드 라이프의 기세는 흡사 미국의 서부 신도시나 일제 강점기의 중국 만주 지역, 21세기 두바이의 변화와 성장이 웹상에서 압축되어 구현되는 듯했다. 실제로 유수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매장이나 빌딩을 세컨드 라이프 상에 마련했다. 전 세계의 마케팅 책임자들에게 세컨드 라이프 계정을 열라고 하고는, 그들이 모여서 토의하는 연례 마케팅 컨퍼런스를 세컨드 라이프 사이트에서 하는 글로벌 기업도 보았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쓰이는 린든달러(L$)는 세컨드 라이프 온라인상에서는 물론이고, US$ 현물 화폐와도 서로 교환유통이 되었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제품을 판매하여 실제 돈으로 100만$ 이상을 번 사람이 나타났다. 대학과 대사관과 같은 기관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입주했다. 일본의 덴츠는 수십만$를 투자하여 토지를 구입했다. 컨퍼런스 이상으로 세컨드 라이프에서 직원들을 모집하고, 인터뷰하여 채용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그야말로 세상은 ‘실제(Real)'와 ’가상(Virtual)'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았다. 가상 세계가 바야흐로 실제와 같은 비중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IT 선진국이라는 한국에도 진출하였고, 2007년에 강연을 했던 분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마케터라면 의당 세컨드 라이프에 계정을 갖고 활동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세컨드 라이프, 영광과 좌절’.

IT 소식을 전하는 한국 인터넷 매체의 2011년 3월 기사 제목이다. 기세등등하던 세컨드 라이프가 3~4년 만에 꺾이고 만 이유를 그 기사에서는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 초보자들이 이용하기에 복잡했다. 둘째, 높은 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했다. 셋째, 음란행위·도박 등의 부정적 행동이 범람했다. 요는 접근해 사용하기에 큰 장벽이 있었다. 정말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는 세 번째였다. 평소 자신을 얽어매던 현실을 벗어나 익명이 보장되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서면 현실 세계에서는 할 수 없었던 뭔가 일탈 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일탈 행위가 집단행동으로 일어나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잊혀 가던 세컨드 라이프는 2020년에 접어들면서 불어닥친 메타버스(metaverse) 광풍 속에 잠깐 소환되었다. 세컨드 라이프가 마케팅과 연계된 영역에 머물렀다면, 메타버스는 일상이 된 SNS 기반 위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물리적 접촉 제한으로 사회 전반을 휩쓸었다. 물론 새로운 용어를 띄우려는 언론의 속성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메타버스 광풍의 정점은 내가 보기에는 2021년 11월에 페이스북(Facebook)이 무한대 기호를 살짝 변용한 로고를 선보이며 메타(Meta)로 사명을 바꾼 것이었다.

기업 아이덴터티(CI: Corporate Identity)를 바꾼 이유를 메타(구 페이스북)에서는 다음 해에 광고 시리즈로 풀어냈다. 건강, 교육, 커뮤니티 활동 등에서 메타버스가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보여주는 영상들이었다. 소개하는 말들 다음에 이런 내레이션으로 맺는다.

Metaverse may be virtual, but the impact will be real. (메타버스는 가상이겠지만, 그 영향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세컨드 라이프 부분에서도 얘기했던 ‘영향’, 곧 ‘impact’를 주는 ‘실제(Real)'와 ‘메타버스’에 의한 ‘가상(Virtual)'을 역접을 통해 대비시켰다. 그런데 반전의 뒤 문장보다는 앞에 나온 가상이라는 메타버스의 한계에 더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더 두드러졌던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역시 반전인가.

지난 6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메타버스 엑스포 2025’가 개막했다. 같은 날 코엑스 다른 쪽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그늘에 묻힌 느낌이 있다. 도서전이 텍스트힙이란 트렌드, 주최 기관을 둘러싼 잡음, 전직 대통령까지 부스를 차린 화제성으로 입장권을 구할 수도 없는 성황인 데 비하여, 메타버스 엑스포 2025는 다룬 기사 하나 찾기가 힘들다. IT 시대라고 하는데, 종이책이 압도하는 반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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