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기부 광고의 전형과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기부 광고의 전형과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5.06.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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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들의 슬픈 표정

2. 어두운 배경

3. 후원 전후 비교 이미지

4. 기부의 즉각적 필요성 강조

5. 강렬한 색상 대비

아름다운재단에서 AI에 기부 광고 이미지의 특징을 물어봤더니 위와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도 보통 떠올릴 수 있고, 실제 기부 광고에서 자주 보는 이미지들이다. 특히 첫 대답에 나온 것처럼 아이들이 나오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 한국의 한 구호단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광고 하나를 보자.

두 눈 아래 다크 서클이 확연한 한 어린이가 물끄러미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광고를 보고 있는 독자를 응시하며 자신을 보아달라고 하는 것 같다. 검은 코트 차림의 여성에게 힘없이 기대고 있다. ‘할머니는 나 버리고 가지 마’란 큰 글씨의 문구로 옆에 선 여성이 아이의 할머니임을 알 수 있다. 그 할머니의 넋두리 같은 말씀이 작은 글씨로 나온다.

“쓰레기 같은 버리고 와도 꼭 따라나와요.

자다 가도 제가 옆에 없으면 울어요.

할머니는 자기 버리고 가지 말라고.”

화면을 클릭하면 아이에 대한 설명이 뜬다.

‘한 살 때 엄마에게 버려져 일주일간 집에 방치돼 있던 아이가 자라 결국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고, 그를 돌보는 할머니조차 치매 증세가 시작됐다.’

아이의 현재 상태를 더욱 자세히 알려고, 단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따라 읽다 보니 의외의 문구가 나온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했으며, 아이의 인권 보호를 위해 대역을 통해 촬영했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돕자는 다른 구호단체의 기부 광고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의 안내 문구를 보았다. 알고 보니 기부광고에 나오는 ‘슬픈 표정’을 짓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대역이라고 한다. 어린이 모델들을 주로 대행하는 매니지먼트사의 홈페이지에는 포트폴리오로 자신들 소속의 어린이들이 출연한 기부 광고들이 게시되어 있기도 하다. 일종의 빈곤 포르노 속으로 어린이들을 밀어 넣고 있는 셈이다.

‘포르노’라는 낱말과 대역 어린이 모델들이 연결되며 섬뜩한 느낌이 든다. 가정폭력의 피해자, 어른들에게 버려지고 굶주림이 일상이 된 아이를 연기한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경험 자체가 트라우마로 남는다. 실제 자신이 처한 환경과 너무나 다른 연기 현장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재단에는 우는 아이가 없습니다.’

2024년 11월부터 아름다운재단에서 펼치고 있는 캠페인의 슬로건이다. 동정심을 유발하고 시혜를 베풀거나 구걸하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는 방향을 잡고 있다. ‘자선적 시혜가 아닌, 삶과 사회의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나눔의 가치를 만들고, 이를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올바른 나눔문화로서 확산’하겠다는 재단의 정관 실현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는 아이가 없는’ 캠페인의 대표가 있다. 아름다운재단의 대표처럼 자리 잡은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다.

‘곁에 아무도 없다면 그것은 자립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캠페인 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렸던 카피였다. 기존 기부 광고의 영향이었을까. 어두운 공간의 한쪽 구석에서 홀로 떨고 있는 덩치만 큰 아이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열여덟이 되어 시설에서 나오는 ‘보호종료아동’이란 용어에서도 ‘보호’, ‘종료’, ‘아동’이란 낱말 각각이 동정심에 먼저 호소한 까닭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열여덟 어른’ 시즌2가 우는 아이가 없는 캠페인과 어우러지면서 비로소 ‘자립’에 무게가 실렸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보통의 청년’으로 그들이 다가왔다. 소년공이 성장하여 대통령이 되듯, 그보다 더욱 멋진 길을 개척하며 걷는 그들을 응원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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