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비즈니스 시대의 브랜딩 전략 (2) : 치폴레(Chipotle)의 문화 혁신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의 브랜딩 전략 (2) : 치폴레(Chipotle)의 문화 혁신

  • 허태윤
  • 승인 2019.02.1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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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폴레 로고
치폴레 로고

치폴레(Chipotle)라는 브랜드가 있다. 멕시코인들이 요리에 빠뜨리지 않고 넣어 먹는 훈연으로 말린 멕시코 고추(할라피뇨)를 일컫는 말인데, 미국식 멕시칸 그릴 브랜드다.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 간간히 알려진 브랜드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다.

이 브랜드가 2천 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해 맥도널드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의 위상이 되었다. 브리또 하나에 7불정도인데, 양도, 질도 정말 먹을 만하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타코벨 같은 패스트푸드와는 달리 냉동 식재료를 쓰지 않아 신선하고 맛도 있어서 패스트푸드와 알라카르테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젊은 층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치폴레는 1993년 요리사 스티브 엘스에 의해 콜로라도 덴버의 대학가에서 지역의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미국식 멕시칸 푸드 레스토랑으로 시작되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는 미국 전역에 2천개가 넘는 직영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6년에 월가에 상장한 이래 2017년 기준, 시가 총액 28조원의 거대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다. (125개국에 4만개의 매장을 가진 타코벨, KFC, 피자헛을 보유한 ‘Yum’이 시가 총액 33조 정도인 걸 보면 2천개의 매장을 보유한 ‘치폴레’의 성장 속도가 어느 정도 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급속한 확장으로 인한 품질관리의 실패로 2015년 대장균 파동과 노로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성장세가 주춤하긴 했으나 미국의 월가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인 주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치폴레’라는 멕시칸 그릴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패스트푸드 왕국인 미국에서 맥도널드, 버거킹, 타코벨과 같은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된 미국 먹거리

치폴레가 탄생한 90년대의 미국의 먹거리는 산업화된 식품들이 범람하던 시대다. 마가린, 쇼트닝, 인스턴트커피, 분말주스 ‘탱’과 같은 과학적으로도 획기적이고, 미국 식품안전의약국(FDA)이 보증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이 대량 생산됐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과영양으로 인한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식품 원료의 발달은 각종 유전자 변형농산물들과 더불어 맥도널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들의 비즈니스에는 날개를 달아 줬다. 이들은 이것들을 이용해 더 싸고 더 열량이 많으며 빨리 먹을 수 있는 더 많은 햄버거, 프랜치프라이, 각종 탄산음료 등을 팔았고 이런 패스트푸드는 풍요의 시대, 미국의 기둥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모건 스펄록(Mogan Spurlock)의 다큐멘터리 '수퍼 사이즈 미'의 포스터
모건 스펄록(Mogan Spurlock)의 다큐멘터리 '수퍼 사이즈 미'의 포스터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이러한 산업화된 식품에 강력한 의문이 제기된다. 2001년 에릭 슐로서(Eric Schlossor)는 ‘패스트푸드의 제국’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패스트푸드 브랜드들을 통렬히 비난하며 미국사회에 경고한다. 2004년에는 모건 스펄록(Mogan Spurlock)이란 감독이 본인이 직접 30일 동안 패스트푸드만 먹고 다른 음식은 물 한 방울조차 먹지 않으며 만든 다큐멘터리영화 ‘슈퍼사이즈 미’가 나오면서 세계 비만국 1위를 만든 주범이 패스트푸드라는 것을 고발하는 일이 일어난다. 뒤이어 2006년에는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의 ‘잡식동물의 딜레마’(Omnivore’s Dilemma)가 나오면서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 유전자 변형식품의 위해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크게 확대되게 된다.

 

 

치폴레의 성공 요인

미국 사회에서 먹거리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통설에 대항하는 새로운 서브컬처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환경 속에서 ‘치폴레’는 기존의 산업화된 미국 먹거리 문화에 항거하는 서브컬처를 지지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를 자처하면서 이 전쟁에 뛰어 들었다.

치폴레는 지역의 신선한 농산물을 이용하고, GMO사용 농산물을 배제하며, 자유롭게 방목을 한 소와 돼지, 닭을 사용하는 ‘산업화 이전의 먹거리로 회귀’라는 자신들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미국사회의 정신적 비전으로 승화시키기 한 브랜딩 전략을 실행한다. 특히 ‘치폴레’는 SNS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start)’ 캠페인이다. 자신들의 브랜딩은 극도로 자제하고 동영상 내내 공장화된 농업의 폐해를 이슈화시키고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재료들을 자연 그대로의 것으로 제공하자는 메시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미국사회에 신선한 반응을 일으킨다.

'Back to the start' 캡처
'Back to the start' 캡처

이때 미국 사회에는 패스트푸드와 관련한 ‘핑크 슬라임 논쟁’ 이라는 사회적 사건이 벌어진다. 핑크슬라임은 고기의 살과 지방을 분리하고 남은 버려지는 찌꺼기에 박테리아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비료, 청소세제 등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인 암모늄수산화물을 넣어 만든 햄버거 패티와 치킨 너겟의 원료다. 2011년 영국출신 셀럽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의 고발로 알려진 이 사건은 SNS를 통해 동영상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이로 인해 그간 소수 엘리트들만이 걱정하던 이슈가 하루 아침에 사회적 트라우마로 발전된다.

치폴레는 바로 이 문화적 이슈를 브랜드의 이념적 기회로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치폴레에 의해 만들어진 2차 브랜드 켐페인인 '허수아비’(Scarecrow) 편은 더 큰 사회적, 문화적 반향을 일으켜, 2014년 칸느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게 된다. 허수아비를 등장시킨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사의 제품을 자연 유기농법으로 포장하는 비양심적인 식품기업들을 고발하고 100% 쇠고기 비슷한 것(beef-ish)라고 씌인 식품을 먹어 치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주인공 허수아비는 낙담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직접 키운 농작물을 수확해 작은 멕시칸 식당을 연다. 그 식당이 바로 ‘치폴레’인 것이다. 이를 본 미국의 부모들이 핑크 슬라임의 걱정을 한 방에 날려 버릴 대안으로 ‘치폴레’를 떠올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14년 칸느 광고제 그랑프리 수상작, 허수아비(Scarecrow)
2014년 칸느 광고제 그랑프리 수상작, 허수아비(Scarecrow)편 캡처

이 브랜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애니메이션을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 무료로 제공했다. 치폴레는 아이들에게 가공식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자연 상태의 식재료를 먹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확산시키는 작업을 통해, 치폴레의 이념을 더 효과적으로 확산시켰다.

더불어 새로운 크라우드 컬처(crowd culture)에 대한 지지를 통해 지속가능한 농법, 팜투테이블(farm-to-table) 레스토랑, 공동체 지원 농업(comminity sponsored agriculture)과 같은 하위문화를 조직화하면서 일종의 먹거리 문화운동의 리더십을 확보하고 치폴레라는 브랜드를 미국사회의 아이콘 브랜드로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록 고속성장에 따른 품질 관리의 허술함으로 브랜드의 진정성이 다소 훼손되었지만, 치폴레의 사례는 새로운 네트웍의 형성으로 크라우드컬처가 조직화되는 SNS시대, 플랫폼 브랜드들을 위해 어떻게 브랜딩을 해야 하는 바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런데 IT강국이라는 이 나라의 플랫폼 브랜드들을 보면, 한편에는 여전히 보호 받고 있는 과거 산업의 기득권과 갈등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보인다. 다른 편에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토종 브랜드의 현실이 보인다.

새로운 경쟁과 그 속에서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 지고 있는 이 시대, 우리 사회를 지배 하고 있는 문화적 통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사회적 파괴(social disruption)와 그것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플랫폼 브랜드의 이념적 기회는 무엇인지, 문화 브랜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허태윤 박사,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 외래교수, ㈜골프 옥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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