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한 아이에게 하나의 컴퓨터가 생기길 바라는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한 아이에게 하나의 컴퓨터가 생기길 바라는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2.19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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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수도라고 해도 지방자치단체로서 재정 형편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던 미국의 워싱턴DC. 그 중에서도 번빌(Burnville) 초등학교는 아주 열악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랬는데 인터넷 대중화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97년 4월, 초등학교 교육에서 정보화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전 세계에 시범을 보이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쟝 크레티엥(Jean Chretien) 캐나다 수상이 미국을 공식방문(state visit)하면서 양국 정상의 영부인들의 행사 중의 하나로 기획되고 집행되었다. 크레티엥 부인과 클린턴(Clinton) 부인, 곧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기자단과 함께 번빌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번빌 초등학교학생들은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세인트 엘리자베스(St.Elizabeth)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채팅도 하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같은 화면을 띄워 놓고 보며 수업을 했고, 그런 모습을 두 영부인이 흐뭇한 모습으로 참관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세계 최초의 ‘국제 가상 교실(International Virtual Classroom)’이라고 띄웠다. 학생들은 서로 토론하면서 미래의 교육은 어떤 형태를 갖게 될 것인가를 예측했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1997년에, 학교 재정도 열악한 워싱턴DC의 초등학교에서 이미 화상 통화와 공유 인터넷을 사용하여 미래 교육 예측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사실이.

며칠 후 캐나다의 일간지인 <글로브 앤 메일(Globe and Mail)>에서 정보화 교육 시범의 뒷얘기를 소개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두 영부인과 기자단을 포함한 일행이 번빌 초등학교를 떠나자마자, 학생들이 사용했던 컴퓨터를 상자에 넣은 후에 모두 어디로인가 실어갔다고 한다. 기사를 쓴 폴 코링(Paul Koring)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직접 얘기해보니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학생들이나 교사들 모두 행사 후에 컴퓨터를 가져가버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보도 자료에는 한 줄도 씌어 있지 않았죠.”

실제 번빌 초등학교에서 인터넷과 연결될 수 있는 컴퓨터는 학교 전체에 한 대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여주기식 행사이고, 바로 그들의 컴퓨터는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육에 열띠게 참여했던 어린이들의 연기력을 칭찬해줘야 할까. 국가 행사에 참여했다는 애국심과 자부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국가 원수들을 초청한 행사에서 이런 전시만을 위한 ‘눈 가리고 아옹’식의 행태가 사실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실상이 보도되니 양쪽 정부에서 당황했다. 캐나다의 통신회사인 노던 텔레콤(Northern Telecom)에서 번빌 초등학교에 컴퓨터 10대를 기증하는 나름의 해피엔딩 반전을 이끌어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컴퓨터 10대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이 해프닝이 디지털의 선도자이자 전도사로 유명했던 양반이 펼친 야심찬 프로젝트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MIT Media Lab의 창설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가 2006년에 TED에서 감동적으로 OLPC(One Laptop Per Child) 프로그램을 주창했다. 100 달러 이하의 랩탑 컴퓨터를 만들어 저개발국, 저소득층 어린이 교육을 위하여 배포하자는 운동이었다. 지금 그 프로젝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가격을 100달러 이하에 맞추지도 못했고, 고장도 잦았던 것 같다. 교육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기만 보낸 경우도 많았다. 워낙 시작이 거창해서인지, 나중의 성과보다는 비웃음만 산 용두사미의 대표적인 사례로 얘기가 되었다. 그런데 2015년까지 대략 1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의 성과를 보면 300만 대 이상의 랩탑 컴퓨터를 전 세계에 보냈다고 한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바탕이 된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거기에 기술과 자본이 따라주는 반전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빈다.

OLPC 제2세대 시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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