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한국 여권운동 창시자는 남자, 독립신문 창간인 서재필이었다.

[신인섭 칼럼] 한국 여권운동 창시자는 남자, 독립신문 창간인 서재필이었다.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18.12.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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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1,2,3면. 2면 빨간 줄은 필자가 강조함.
독립신문 1,2,3면. 2면 빨간 줄은 여권과 관련된 부분(필자 작성)

서재필 박사는 개화기 한국 현대화의 기수였다. 그는 독립신문 창간인이다. 그런데 1896년 4월 7일 창간호 둘째 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면 그는 틀림없이 한국 최초로 여권운동을 시작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글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조선 부인네도 국문을 잘 하고 각색 물정과 학문을 배워 소견이 높고 행실이 정직하면 무론 빈부 귀천 간에 그 부인이 한문은 잘 하고도 다른 것 모르는 귀족 남자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다...

한글을 언문이라 깔보던 시절, 여염집 부인이 바깥 나들이를 하려면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무렵의 일이다. 위에 있는 이 말은 폭탄선언이라고 할 만큼 대담하고 대단한 말이었을 것이다. 특히 "한문은 잘 하고도 다른 것 모르는 귀족 남자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그 말이 당시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67년 미니 스커트를 입고 서울에 나타난 가수 윤복희가 화제거리가 된 일이 있지만, 19세기 말에 신문이라는 "신문물"에 게재된 이 글이 미쳤을 영향은 비교가 안 될 만큼 폭발적이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독립신문 창간호 1면의 일부와 3면에 여권문제를 언급한 부분
독립신문 창간호 1면의 일부와 3면에 여권문제를 언급한 부분

독립신문은 한국 근대광고의 조상이었다. 물론 이 신문보다 10년 앞서서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漢城周報) 4호에 독일상사 세창양행의 광고가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였음은 사실이나, 사실상 광고가 제 구실을 하게 된 것은 독립신문에 게재된 광고부터였다. 창간호 3면에 개재된 언더우드의 "한영자전, 한영문법"은 최초의 영어 입문서였다. 나아가서는 창간호 맨 위에 “광고"란 말은 쓴 것도 이 신문이었다. 광고를 많이 자주 내면 단가를 할인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 신문이다. 또한 신문을 길거리에서 팔 경우 열(10)장을 팔면 8장분만 셈한다는 것도 밝혔다.

눈높이로 역사를 볼 때 서재필이 이 나라에서 120여년 전에 이미 여권 운동을 선언한 선각자였음을 알 수 있다. YWCA 빌딩 어느 한 구석에라도 이 글을 실어야 하지 않을까.

신인섭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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