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나에게만 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당신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나에게만 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당신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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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완전히 별세계죠? 평생 못 보신 모습들이었을 거예요. 그런 데는 저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프로들의 세계예요.”

아파트 건설 업체의 광고 담당자를 만났다. 최근에 우리 아파트단지의 재건축조합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니, 그 친구가 바로 웃음을 터뜨리며 위와 같이 말했다. 회의를 주관하는 조합 측과, 조합의 태도에 의구심을 가지고 안건마다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 조합원이 주고받는 설전(舌戰)이 전개되었다. 중간중간 설계사무소나 시공사들이 나서 조합 측을 위한 지원사격을 하고, 조합 반대파들은 게릴라처럼 불쑥 나서 고함을 치고는 회의장 참석자들 사이로 수풀 속으로 포복하듯 모습을 감추곤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민(良民)에 불과한 참석자 대부분이 그 전투에서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

조합 반대파가 불만으로 크게 제기한 문제 중에 상가 사람들에게 거주민보다 더한 혜택이 간다는 게 있었다. ‘우리 돈으로 왜 그들에게 더한 혜택을 주느냐’라고 했는데, 예상 문제에 있었던 것처럼 똑같은 처우라고 설득력 있게 대답하자, ‘어떻게 똑같을 수 있느냐. 우리에게 더 이득이 돼야 하지 않느냐’로 말이 살짝 바뀌었다. 평등을 부르짖다가, 같은 상태가 되면, 그 평등의 상황에서 개념 자체까지 영 마땅치 않게 되는 경우다.

더 팰리스 73 홈페이지
더 팰리스 73 홈페이지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서울 서초구의 '더 팰리스 73'이라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홈페이지에 내건 홍보 문구가 논란 속 화제다.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사과문까지 발표했지만, 문구가 처음 준 충격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꽤 오랫동안 소환될 조짐도 보인다. 왜 논란이 되었을까?

평등은 인류에게 절대 가치였다. 조지 오웰의 이제는 고전이 된 소설로,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동물농장>에 나온 ‘평등(equal)’을 포함한 문장이 있다.

출처 Quora
출처 Quora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평등(equal)이라는 단어 자체의 절대 동등함에 비교급을 붙여 불평등을 일구는 반전을 만들었다. 워낙 이 문구가 유명하다 보니, 원래는 앞부분의 ‘All animals are equal(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란 계명(commandment)으로 나왔는데, 전체주의 독재 체제로 바뀌면서 ‘but’부터의 뒷부분이 첨가되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이전 냉전 시대에 스탈린 시대로부터 공산주의 체제의 숨 막히는 상황의 풍자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배웠고, 평등을 강조하면서도 체제 안에서 특권계급으로서 공산당원들을 고발하는 촌철살인의 블랙 유머로 위의 문장을 익혔다. 공산당은 ‘평등’이란 가치까지도 왜곡시키는 집단이라는 증거였다. 어쨌든 평등은 숭고한 이상이요, 그래서 이룰 수는 없어도 지향해야 하는 절대 가치의 지위가 있었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있으나,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대놓고 드러냈다. 조지 오웰식으로 ‘더한 평등’ 혹은 ‘특별한 평등’을 꿈꾼다고 했으면, 그렇게 격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임팩트는 많이 떨어졌겠지만 말이다. 사실 궁전이라는 뜻의 ‘팰리스(palace)’라는 다른 아파트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단어 자체가 평등과는 어긋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지 ‘식별’을 위한 이름이나 ‘차별화’의 방편이라고 해도 평민과는 다른 거주 공간으로서 평등을 파괴하는 인자에서 출발한 이름이지 않는가. 그런 더한 평등을 누리는 이들에 편입되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직설적 홍보 문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더 팰리스 73’ 아파트의 홍보 문구가 논란이 되던 시기에 <드림 팰리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평론가 손희정은 이 영화가 ‘피해를 생산함으로써 유지되는 구조와 그에 기생하는 권력의 문제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개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다. 계급성을 배제하고 평등하게 개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보여주는 이 영화의 작법이 ‘사람들이 대담하다 싶을 정도로 뻔뻔해지는 시대’의 용기 있는 반전으로 보인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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