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차별 철폐 메시지 뒤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차별 철폐 메시지 뒤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5.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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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상자로 만든 차(soap box car)를 타고 어린이들이 경주를 한다. 모두 남자애들인데, 여자 어린이가 딱 하나 끼어 있다. 남자애들에 전혀 기죽지 않을뿐더러 그들을 하나씩 제치면서 소녀가 달린다. 약간 걱정도 되지만 그래서 더욱 대견스럽게 여자 어린이를 쳐다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비치고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저 소녀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과 그녀가 품고 있는 열의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저 소녀에게 너는 남자들보다 무조건 저평가될 거라고 말해주어야 할까요?”

내레이션의 번역은 <위코노미(크레이그 킬버거 · 홀리 브랜슨 · 마크 킬버거 지음, 이영진 옮김, 한빛비즈 펴냄, 2020) 136쪽에서 옮겼다. 2017년 미국 슈퍼볼에서 방영된 아우디의 60초짜리 광고였다. 그 광고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크게 세 가지를 느꼈다.

  • 약간 작위적이지만 그래도 시의성이 있는 소재를 잘 택했다.
  • 자동차라는 업종과 연결하는 부분도 괜찮았다.
  • 그런데 아우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우디는 BMW,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프리미엄 부문에서 경쟁하는 다른 독일 브랜드와 대비하면 여성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독일이 먼저이고, 아직도 강인하고 정밀한 전통 남성 기술자의 페르소나가 짙다. 모터쇼나 콘퍼런스와 같은 행사에서 만난 아우디 사람들도 대부분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그런 기업이 갑자기 여성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들고나오다니 뭔가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광고계와 자동차 업계에서 비아냥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고, 위의 책 같은 쪽에서도 이렇게 반응을 정리했다.

‘비평가들은 오히려 그 기업의 문제점을 짚어내며 비판했다. 광고를 내보낼 당시 그 회사의 중역 여섯 명 중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이사회의 여성 비율도 다른 주요 경쟁사보다 현저하게 낮은 16%에 불과했다.’

출처 위키디피아
출처 위키디피아

커뮤니케이션 내용과 실제 행동이 엇박자를 내면서 본의 아닌 반전을 만들어낸 기업들은 계속 나왔다. 2017년 세계 광고계에서 최고의 화제를 몰고 온 뉴욕 월스트리트에 세워진 ‘Fearless Girl’ 동상을 세운 주체는 세계적인 투자회사 SSGA였다. 동상이 칸을 지배하고, 세워진 직후부터 뉴욕 관광객들이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 피사체로 떠오르는 가운데, 정작 SSGA는 그들이 동상을 통하여 설파하려던 메시지와 정반대가 되는 사내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말에 미국 노동부가 2012년부터 SSGA의 성별 임금 격차를 조사했는데, 고위직 여성 305명이 같은 직위에 있는 남성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위 흑인 임원 15명은 같은 직급의 백인들보다 작은 임금을 받은 인종차별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SSGA 측은 체불임금과 합의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 원화로 57억 원을 내기로 노동부와 합의했다. SSGA의 자산이나 수익 규모를 보면, 정말 푼돈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반전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은 그야말로 ’priceless’, 금액으로 따질 수 없었다.

광고 내용과 실제의 불일치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부정적 반전을 예방할 수 있는 길도 있다. 자신들의 실상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당위성을 밝히는 방식이다. 부끄러운 곳을 그렇게 드러내는 기업이 있을까. Citi Bank는 "It's about time"이라고 명명한 캠페인에서, 은행 내부에서 여성 급여가 남성 대비 29%가량 적고, 상위직에서 여성 비율이 37%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부 실상을 공개했다. 그런 솔직함이 긍정적인 반전을 만들었다.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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