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남산의 부장들' 과 '줄리어스 시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남산의 부장들' 과 '줄리어스 시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6.08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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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미뤄두었던 <남산의 부장들> 영화를 보았다. 큰 줄거리는 대부분 알고 있고, 그 당시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어, 영화와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다. 전현직의 두 중앙정보부 부장들이 친구 사이로 나오고, 경호실장으로 나온 인물이 키가 크고 사투리를 쓴다든지 하는 사실과 좀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와 워낙 극적인 사건이기에 시종일관 주의를 기울여서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의 최후 진술이 육성으로 나오는 부분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암살범 브루투스의 연설 대목이 계속 어른거렸다.

“If there be any in this assembly, any dear friend of Caesar’s, to him I say that Brutus' love to Caesar was no less than his. If then that friend demand why Brutus rose against Caesar, this is my answer : 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

여기 모인 사람들 어느 누구보다 저 브루투스도 시저를 사랑했습니다. 왜 브루투스가 시저에 대항하여 일어났는지 묻는다면 이게 저의 대답입니다 :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해서였습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의 주인공인 브루투스가 시저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토한 열변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을 더 사랑해서’라는 표현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우리로 치면 애국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 곧 로마 공화정에 대한 사랑이 시저라는 개인에 대한 사랑을 이겨서 암살에 가담하게 되었다는 브루투스의 말이 시저의 장례식에 모인 추모 군중들의 마음을 사려 하는데, 시저의 부하 무장인 안토니우스가 등장하여 연설을 시작하며 반전이 일어난다.

“Friends, Romans, countrymen, lend me your ears;

I come to bury Caesar, not to praise him.

The evil that men do lives after them;

The good is oft interred with their bones;

친애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시저를 묻기 위하여 왔지, 그를 찬양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악행은 오래 살아남지만,

선행은 대개 뼈와 함께 묻혀 사그라집니다.“

시저의 암살 후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브루투스를 비롯한 시저 암살자들이 시저의 가장 충실한 부하였던 안토니우스를 장례식에 부르고, 연설할 기회까지 준 게 의외였다. 안토니우스가 연설의 처음에서 말한 것처럼 시저를 찬양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시저를 찬양하지 않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고, 선행은 곧 잊혀질 것이란 말이 분위기 반전의 기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시저가 왕관을 세 번이나 거절했지만, 그래도 고결한 브루투스가 시저는 야망이 너무 컸다고 하니 그럴 것이라고 한다. 그런 선행들이 벌써 망각되고 사라지며, 시저에 대한 나쁜 말들만 횡행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고, 시민들이 그의 의도대로 웅성거린다.

흔들리는 시민들에게 그는 시저의 유언장이 있으면, 그게 시저가 어떤 이인지 말해줄 것이라고 한다. 시저에 대한 동정심과 긍정적인 기억을 되살린 시민들을 유언장을 읽어주겠다면서 시저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간다. 마음이 흔들리는 시민들에게 암살범의 행위를 비난할 결정적인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런 로마 시민들을 앞에 두고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를 가리키며 직구를 날린다.

“고귀한 시저는 칼을 쥐고 덤비는 브루투스를 보았을 때, 역적의 칼날보다도 더 무서운 배은망덕에 넋을 잃었고, 그의 튼튼한 심장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브루투스에게 붙이던 ‘고귀한’이란 수식어가 시저로 옮겨 왔다. 로마 시민들이 브루투스 일당에게 등을 돌려 그들을 살인범으로 쫓기 시작했다. 브루투스 일행이 도망간 후에 유언장이 공개된다. 안토니우스가 아닌 18세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해 놓았다. 안토니우스의 승리 뒤의 반전이 또 이렇게 시작한다. 셰익스피어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안토니우스의 연설은 설득력을 키우는 문장으로 손꼽힌다. 고비마다 터지는 반전들이 바로 그 설득력의 근간이었다.

빈첸초 카무치니의 '시저의 죽음'
빈첸초 카무치니의 '시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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