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링컨의 자학개그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링컨의 자학개그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1.2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가장 효과가 좋은 개그 방식은 자신을 과장되게 낮추거나 비하하면서 펼치는 자학개그라고 한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듣는 이가 올라가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위안을 얻게 되어, 좀 너그럽게 되는 효력을 발휘한다. 대부분 사람이 자기가 잘났다고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차별화가 되기도 한다. 사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는 이들이 인정을 받으려고, 많은 경우에는 자격지심에서 과하게 자랑을 하고 그래서 반감을 사게 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자학개그는 거꾸로 겸손함으로 자신감을 드러내는 발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뛰어남을 홍보하며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에게서는 그런 겸손함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자학개그를 보기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힘들다. 그런 대부분의 정치인과 달리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자학개그의 달인이었다. 과장되게 자기의 치적이나 능력을 말하는 데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후안무치했던 트럼프의 이임 기념으로 그 대척점에 있는 링컨의 반전이 있는 자학개그 몇 가지를 다시 찾아보았다.

젊은 시절 링컨과 메리 토드
젊은 시절 링컨과 메리 토드 (출처 owlcation)

링컨이 어느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메리 토드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세계에서 춤을 가장 못 추는 사람과 춤을 추어보시겠습니까?”라며 함께 춤추기를 신청했다. 그렇게 숙이고 들어오는데, “안 되겠네요”라고 거절하기 힘들다. 게다가 얼마나 못 추기에 그런 것인가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스스로 최악의 댄서를 자처하는 이와 춤을 춘 메리 토드는 밟힌 발의 통증과 함께 링컨의 부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고릴라를 보기 위하여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는 없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볼 수 있다.’ 링컨의 큰 덩치와 외모를 두고 그의 정적들이 이런 인신공격을 수없이 가했다. 이런 유치 하고 치졸한 공격에 링컨은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농담으로 살짝 비틀며 반전을 꾀했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아주 예쁜 아기였다고. 어느 날 마을에 서커스단이 들어왔어. 그 예쁜 아기를 보고 단원으로 키우면 좋겠다고 욕심이 나서 마침 자기네 서커스단에 있던 갓 태어난 아기와 바꿔치기를 하고 떠나버렸어. 그런데 서커스단 아이의 인물이 형편없었다고 해. 그래서 내 얼굴이 지금 이 모양이라고.”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반격을 하는 순간에 농담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논리 따위는 상관없이 그냥 자신이 못생겼다고 인정하며 그 자체를 개그의 소재로 삼아버렸다. 그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이 왔다갔다 한다면서 ‘두 얼굴’을 가졌다고 링컨을 비난한 정적에게는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런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겠소?”

두 얼굴 운운한 이는 링컨과 젊을 때부터 숙적 관계로 노예제를 두고 벌인 ‘링컨-더글러스 논쟁’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 더글러스는 단신으로, 키가 2미터에 가까웠던 링컨과 아주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찌질한 기자 하나가 체형을 소재로 삼아 기사를 쓰다가 링컨에게 사람의 다리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물었다. 더글러스의 짧은 다리를 공격하고 우스개로 삼는 걸 기대했는데, 링컨은 이렇게 답했다.

“모름지기 사람의 다리는 몸통에서 땅까지 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saturdayeveningpost
출처 The Saturday Evening Post

인신공격을 기대하고 있던 기자가 머쓱해졌다고 한다. 링컨의 자학개그가 효력을 발휘한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상대가 지적하거나 공격하는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싸움을 기대했는데 잘못했다거나 부족하다며 인정해버리면 상대의 맥이 풀리기 마련이다. 둘째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화술을 구사한다. ‘최악의 댄서’, ‘서커스단’, ‘두 얼굴을 가졌다면’, ‘사람의 다리라면’ 등으로 한숨 죽이며 상대를 끌어들이는 초식을 쓸 줄 알았다. 셋째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었다. 상대의 말을 인정해주고,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마력을 발휘한 자학개그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