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전통보다는 미래를 그린 장이머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전통보다는 미래를 그린 장이머우"

  • 김주호
  • 승인 2022.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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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lympics

장이머우(張藝謀)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총감독을 맡으면서 올림픽을 두 번이나 연출한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그것도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같은 도시에서 14년 만에 하계와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1952년 오슬로 이후 처음으로 수도에서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을 맡은 감독이 된 것이다. 장 감독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인생 등의 영화감독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고, 중국 지역의 대형 야외공연인 인상 시리즈를 연출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중국의 최대 국제행사인 올림픽의 개막식을 장이머우가 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선택인 것 같다.

그러나 장이머우의 두 번의 올림픽 개막식 연출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이 중국의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슬로건 하에 중국의 종이, 화약 등 4대 발명품을 소재로 역사와 전통을 강하게 부각했다. 1만 5천 명의 출연진과 각종 소품을 동원해 4시간에 걸쳐 대형 퍼포먼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관중을 압도했었다. 특히 중국의 육상 스타 리닝을 통한 스타디움 벽을 달려서 지붕 위의 성화대에 점화를 하는 장면은 10만 관중의 함성을 자아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2022년 2월 5일 8시 베이징의 국가체육장(별칭 새 둥지, 올림픽경기장)에서 시작되어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장 감독은 개막식에서 중국 다움보다는 세계를 향한 인류애나 공존을 담백하게 표현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요소라면 동양의 24 절기를 한자와 함께 표현하거나 전통 매듭 모양 등 상징적인 것이 있기는 했지만 중국의 전통 춤이나 의상 등은 최소화되었다. 눈을 상징 모티브로 ‘다 함께 미래로(Together for a Shared Future)’라는 대회 슬로건의 의미를 잘 소화해냈다. 평범한 시민들이 줄지어 걸어가면 밑에 화면에 코로나 의사들이 나오는 장면의 ‘동행’이 대표적이다. 출연진도 4천 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것도 전문적인 무용수나 유명 연예인 아닌 일반인들을 활용했다. 물론 관중도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초청된 2만 명 정도만 함께 해 빈 스타디움 좌석이 많이 보였다.

출처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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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스포츠 경기 종목을 24절기와 연계해 고화질 영상으로 편집한 것이나, 동계 경기 장면과 함께 일상생활의 모습을 교차 편집한 것, 그리고 중국 어린이들이 스케이트 등을 타고 넘어지면서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모습, 중국의 붉은색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파란색과 흰색 등으로 표현한 점 등을 통해, 송승환 감독의 말대로 ‘인류의 보편성’을 추구한 요소들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이번 개막식의 특징 중의 하나는 LED로 운동장 바닥을 채워 다양한 영상 효과를 표현했는데 한쪽에 세운 LED 기둥의 영상과 함께 퍼포머들의 연기와 잘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바닥 LED에 종이 파도가 넘실대는 가운데 연기자들이 등장해 스케이트를 지치는 장면은 환상적 연출이었다. 이외에도 증강현실로 표현된 눈꽃송이, 라이브 모션 센서를 활용한 얼음판의 눈꽃송이 등이 있었지만, 2008년의 대형 무대장치나 소품 등은 거의 없는 개막식이었다.

출처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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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가 사전 인터뷰를 통해 성화 점화가 ‘올림픽 역사상 전례 없는 파격’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 기대감이 많았지만 파격이기보다는 본질에 충실했다는 평가다. 피켓 걸들이 들고 들어온 매듭 모양, 또는 눈송이 모양의 국가 표시판, 그리고 개막식 내내 운동장을 장식하는 눈송이 또는 비둘기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다시 큰 눈송이가 된다. 큰 눈꽃송이는 다섯 개의 올리브 잎을 담고 있는 상징물이 되는데, 결국 그것이 하나의 커다란 눈꼴 송이 구조물로 운동장 가운데 나오고 거기에 두 명의 마지막 주자가 들고 온 성화봉을 그대로 꽂아 놓는 것으로 점화가 완료된다. 그리고 그 거대한 눈꽃송이 구조물이 그대로 성화대가 되어 다시 공중으로 올라간다. 아마도 장이머우는 점화대가 따로 없는 성화 점화, 가장 작은 성화대, 움직이는 성화대가 형식상 ‘파격’이라고 본 것 같다. 개막식 후 장이머우는 저탄소, 그린 올림픽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관중 입장에서는 깜짝 주자나 특별한 점화 방법에 함성을 지르고 싶었을 것이지만, 함성을 지르기보다는 그저 고개를 끄떡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복 입은 여성의 등장으로 문화공정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아쉬운 부분인데, 중국 내 소수민족보다는 전통의상을 입은 91개 참가국 사람들을 참가시켰으면 어땠을까 싶다.

평창의 개막식이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모습을 한국의 IT 기술과 접목해 아이들의 꿈과 함께 보여주었고, 일본 도쿄 올림픽 개막식은 코로나19를 의식해 현실에 처한 상황에 대한 묘사와 헌사, 격려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머물렀다는 생각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코로나19 팬데믹 환경에서 엄격한 방역 망 속에 유료 관중 없이 개최된다는 점과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외교적 보이콧,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탄압이나 언론환경에 대한 비판 등의 냉엄한 상황에서 개막되었다. 그러나 장이머우는 ‘다 함께 미래로’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를 실용적이고 담백한 연출을 통해 보여주었다.

 


김주호 KPR 사장, 전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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