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서재필 박사가 광고에 남긴 유산

[신인섭 칼럼] 서재필 박사가 광고에 남긴 유산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1.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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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호 1면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 서재필 하면 우선 독립문과 독립신문이 떠오른다. 독립신문은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이고, 그것도 진짜 글이라고 하던 진서(眞書) 한문이 아니고, 언문(諺文)이라 해서 깔보던 한글만으로 쓴 신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문 경영을 하는 사람과 광고 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그의 광고관이다. 우선 1896년 4월 7일 창간호 발간사에 해당하는 컬럼의 제목이 “광고”이다.

창간한 해 10월 3일 영문 페이지에는 다음 해부터 영문판을 따로 발행한다는 사고를 영문으로 게재하는데 영문, 한글, 영한문을 합친 구독료 및 한글과 광고료를 발표한다.

1896년 10월 3일 영문판에 있는 사고(NOTICE)
1896년 10월 3일 영문판에 있는 사고(NOTICE)

간단한 이 요금표에서 알 수 있듯이 광고 게재 기간이 길수록 1인치 당 광고료는 싸게 되어 있다. 광고 단위는 인치(Inch)였다.

창간 다음 해 1897년에 따로 발행한 영문판 1면에는 광고료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그의 광고관의 일단이 나타난다.

물론 광고 매체로서 독립신문은 급속히 발전하는 한국 무역의 일부를 확보하는 데 월등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광고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1898년 1월 5일 영문판 INDEPENDENT 1면에 게재된 광고 요금에는 그의 광고관의 일단이 나와 있다.
1898년 1월 5일 영문판 INDEPENDENT 1면에 게재된 광고 요금에는 그의 광고관의 일단이 나와 있다.

1899년 6월 2일에는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만한 광고 해설 기사가 실린다. 신문 1면이 3단이던 무렵 둘째 단과 셋쩨 단 절반 이상에 걸쳤다. 간단히 말해서 광고의 힘을 증기에 비유했다. 화륜선(火輪船) 즉 기선이 바다를 오가고, 화륜거(火輪車) 즉 기차가 몇 만리 육지를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 왕래하는 것처럼 신문사에 와서 광고를 게재하라고 권유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신문 광고료였다. 알기 쉽게 광고 크기를 줄로 표기했고 1회, 1주일, 1개월, 6개월 1년으로 기간을 나누어 광고료를 표시했는데, 다음과 같다. 쉽게 말해 광고를 많이 자주 할수록 단가는 싸진다는 것이다. 작은 단위인 7줄의 1회, 1주일, 1개월의 경우를 예로 든다. 영어로 Volume, Frequency Discount, 우리말로 옮기면 체감(遞減) 요금 제도이다.

신문 1단은 28줄, 4분의 1단은 7줄이 된다. 1회 광고료는 20전이다.

1주일 6회 광고하면 20전 x 6일=1원 20전인데, 할인해서 75전이다.

1주일에 75전으로 1개월이면 75전 x 4주=3원이어야 하는데, 할인해서 2원이다.

1899년 6월 2일자에 2단과 3단에 게재된 광고에 대한 해설과 문장으로 설명한 광고 요금
1899년 6월 2일자에 2단과 3단에 게재된 광고에 대한 해설과 문장으로 설명한 광고 요금

독립신문이 발간된 2년 뒤에 창간된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도 표현은 달랐으나, 체감요금제였다. 한국 최초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과 제(뎨)국신문도 독립신문처럼 자세히 적지는 않았으나, 다음을 보면 체감 요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매일신문 광고료 : 1898년 4월 28일자

우리 신문에 누구던지 광고를 내려 하면 한 줄에 매삭(10일) 80전씩인데 다섯 줄이 넘으면 매줄에 70전씩이오. 10줄이 넘으면 60전씩인데 한 번만 내는데 줄의 수 걔계감 없이 합하여 50전이오.

제국신문 광고료 : 1902년 11월 1일자 신문

광고료는 4호 활자 한 줄에 엽전 서 돈씩을 받는데 줄 수의 다소와 기한의 장단에 가감이 있사오니 와서 의논하시오.

매일신문(오른쪽)과 제(뎨)국신문의 광고료
매일신문(오른쪽)과 제(뎨)국신문의 광고료

1898년에 창간한 황성신문(皇城新聞)과 1904년에 영국인 배설(裵說)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도 표현은 달랐지만, 모두 체감요금 제도를 사용했다.

황성신문(위)와 대한매일신보 광고료

서재필이 도입한 체감요금제는 한일합병 이후에도 2-3년간 남아 있었으나, 그 뒤 광고주별 비밀단가제로 바뀌었고 지금까지도 단일 단가제로 남아 있다. 정작 광고주별 비밀 광고요금제로 후퇴한 일본은 그 뒤 이 모순을 고쳐서 지금은 자주, 많이 광고를 살수록 단가는 싸진다는 합리적인 체감요금제로 완전히 바뀌었다.

2021년 2월에 발표된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광고요금표의 일부를 보면 체감요금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계약 요금 기간 단위를 6개월로 한 광고 크기별 단가를 보면 전국판 1단 광고료는 3,305,000엔인데 전면광고인 15단은 2,657,000엔으로 20%나 할인된다. 즉 6개월 사이에 게재한 광고의 합계가 15단이면, 이런 할인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6개월 기간 한 달에 한 번씩 전면광고를 게재하면 15단 x 6회 = 90단이 되고 1단당 단가는 2,304,000엔으로 1단 단가 3,305,000엔의 30%나 할인된다.

일본 아시히신문(朝日新聞) 2021년 광고요금표 일부

서재필이 남긴 유산은 1896년 4월 7일 창간한 독립신문과 그 이듬해에 세운 독립문 외에 신문경영의 기본이 되는 광고요금 제도의 원칙을 알려 주었다. 125년 전의 일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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