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스프린터와 마라토너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스프린터와 마라토너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03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식탁 위에 음식이 놓여 있다. 좋아하는 음식, 먹음직스러운 음식, 늘 먹던 음식, 싫어하는 음식 중 어떤 것부터 먹는가? 효용가치로 보면 맛있는 것부터 먹는 것이 합리적이다. 배가 부르기 전에 먹어야 제대로 맛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을 처리하는 문제라면 어떨까? 해야 할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분배해서 일정을 관리하고 시간표를 짜는 일 말이다.

먼저 초기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일이 벌어지면 머리끈을 동여매고 온몸을 불사른다. 초반에 끝내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에너지가 몰려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뒷심 부족이 나타나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한다. 물론 여러 프로젝트를 위해 치고 빠지는 스타일을 택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섬세한 검토가 생략되고 직관이나 경험에 의지해서 곳곳에 이가 빠지거나 용두사미의 결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단타 위주의 토막살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조변석개와 일희일비의 관점으로 일과 사람을 모두 놓치기도 한다.

반대로 마지막 스퍼트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마감일이 돼서야 탈고하는 작가들처럼 말이다. 절박해야 집중력이 생기고 일의 효율도 월등해진다고 강변하는 이들이다. 원고를 채촉하는 출판사는 불안한데 당사자는 게을러서가 아니라며 태연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유형은 컨디션의 기복이 심해 일정한 수준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숙련공은 노력과 경험의 산물이다. 자신의 일을 단발적인 퍼포먼스로 바라보는 교만한 태도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다.

프로 비즈니스맨을 꿈꾼다면 시간이든 정성이든 일에 투입되는 자원을 균형있게 배분하는 감각을 기를 것을 권장한다. 마라토너의 코스별 운영 전략을 상상해보라. 오르막과 내리막의 보폭과 호흡이 다르다. 코스마다 적절한 방식으로 몸의 에너지를 절제하고 안배한다. 그리고 마지막 스퍼트의 순간은 온 몸을 내던진다. 구간의 난이도에 따라 체력을 쏟아내야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의 진척에 따라 단위와 강도를 정해 마감하는 것이 좋다. 과정마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점검하는 것은 노련한 사수의 영점조준처럼 빈틈없이 목표로 다가 설 준비의 시간이 된다. 시기별로 계획표를 세워 진척도를 점검해라. 지나침이나 모자람 없이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다가서는 자의 모습이 된다. 또 다른 장점은 단계별로 획득한 데이터나 정보들이 자유롭게 뒤섞이고 결합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쪽의 생각이 저쪽으로 옮겨져 더 근사한 생각이 떠오른다. 일과 삶이 순환하는 방식 때문이다. 차창 밖을 보다 갑자기 새로운 방안이 떠올랐다면 그런 이유다. 한 계단씩 풀어가고 다시 한 계단씩 올라서라. 다시 모으고 뒤섞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라. 시대의 화두인 이종결합의 플랫폼도 결합과 파생의 힘이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인생이다. 하루가 가야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온다. 슬기로운 주부의 하루의 마지막은 서랍 속 가계부다. 그 속에서 가족의 행복을 다진다. 일 속에서 인생을 배우는 비즈니스맨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복기해서 얻은 교훈을 내일의 과정 속에 적용하는 순간마다 고목에 새겨진 나이테 같은 연륜도 쌓일 것이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