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이어서 걸어가기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이어서 걸어가기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1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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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영하 18도의 서오능 일주는 한시간 남짓 걸렸다. 

오가는 사람들은 두꺼운 방한복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언젠가 함께 제주도 올레길 300km를 완주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네명 일행이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찔러넣은 손을 빼내며 역촌역 부근의 넙딱집의 문잡이를 열고 들어섰다.

안성으로 직장을 옮겨 세시간후 돌아가야할 동료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소주는 달았고 고기는 고소했다. 골동품같은 카세트에서 대학시절 그들이 흑석동의 카페에 죽치고 앉아 신청곡으로 적어내던 들국화의 '행진'이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걸어가야한다며 분위기를 복돋았다. 육십고개를 바라보는 자들의 노변한담이 이어졌다.

장충동의 언덕배기 학교에서 강의 하나를 맡고 있는 자는 우울한 연말을 보냈다. 그는 지난 학기 종강시간에 인생이란 오르막 내리막이라 실패는 없고 실수일 뿐이니 엎어진 자리에서 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감동했다고 댓글을 올린 학생들이 교수평가를 박하게 주었다며  씁쓸해했다. 열의를 보인답시고 시험을 세 번으로 늘린 것이 반발을 부른 듯했다.

그 오른쪽에 자리잡은 이는 대학홍보실에서 반평생을 보내다 나이가 들어 작년 말 보직이 바뀌었다. 기타만 들려주면 세상물정 아랑곳않는 한량인데 일주일에 오만보 걷기를 실천 중이다. 코로나가 풀려야 베트남이든 중국이든 골프를 치러갈텐데 올해는 틀렸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오른쪽으로 옮기면 '머시블루'란 파워블로그를 운영하는 자가 고기를 뒤집고 있다. 그는 대학동기가 운영하는 '연탄발'이란 술집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연탄에 굽는 것도 아니면서 유명곱창집의 이름을 흉내내어 연타발이란 간판을 걸고 지난 10년동안 부부가 함께 의욕을 불태웠지만 코로나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일행의 마지막 멤버는 케이블 방송사의 본부장이다. 그는 대기업을 거래처로 두고 있는데 그들의 횡포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 말미엔 역시 미국과 일본에 유학간 두 딸의 근황을 걱정했다. 그 쪽 사정이 악화되어 인턴과 아르바이트가 끊겨 지출되는 돈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자리를 파할 무렵 누군가 불쑥 이런 제안을 꺼냈다. "요즘은 책도 글빨보다는 아이디어라는군. 시대적 감수성이 중요하다는거지. 이제 실버세대가 주인공이라니 이런저런 글을 써서 모아 책을 한번 내보는게 어때? 아니면 말고"라는 의견이였다. 일순 자리에 생기가 돌았다. 불꽃을 튀긴 논쟁과 타협끝에 구정전 제주여행을 떠나 책의 방향을 정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들의 일꺼리가 하나 늘어났다. 일행은 스마트폰을 뒤적여 여행일정을 잡고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들의 글들이 서로의 카톡으로 옮겨다녔다. "광합성의 관점으로 보면 가지에 앙상하게 붙은 잎새가 가지와 나무와 뿌리를 지탱시키는 근원이니 잎이 뿌리인 셈"이라며 이 정도면 자신의 생각이 글감이 되겠냐며 넌즈시 자신의 필력을 점검해 보는 이도 있었다. 자, 그들이 연말에 책을 펴낼지 포기할지 아니면 자전거 여행으로 틀어버릴지 알 수 없다. 모든 서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신변잡기다. 우리네 인생은 그런 이야기로 채워지고 이어지다 끝을 맺는다. 어쨌거나 이들은 남들 이야기로 허송세월하는 인생의 방관자를 닮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한 어떤 이야기도 의미있는 이야기로 남으리라.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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