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코로나블루의 학생들에게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코로나블루의 학생들에게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8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엄마손이 약손이지~ ' 엄마의 손이 아랫배를 몇 번 쓸고 가면 아픈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엄마 손에 약을 바른 것이 아니였다. 엄마는 뭐든지 해결해주는 슈퍼맨이니 배도 당연히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나 '엄지 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는 순간 술, 도박, 마약과 같이 '도파민에 의한 단기 피드백의 올가미(short-term Dopamine-driven feedback loop)가 씌워져 내일을 향한 발걸음이 가벼워지게 된다. 고래가 춤추는 것도 그런 이유다.

광고는 소비자의 기대감을 표현하는 일이다. 한 구인 광고를 보자. "위험한 행로 (行路)에서 일할 남자 구함, 임금박봉, 심한 추위와 장기간의 여정으로 안전 보장 못함, 위험천만, 무사귀국도 보장 못함. 성공했을 때는 명예" 탐험가 어네스트 새클턴(Ernest Shackleton)이 남극을 탐험하는 대원을 모집하는 광고다.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아 실현의 욕구를 극적으로 건드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최근에 화제를 모은 P&G의 “like a girl”캠페인은 여자다움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여성스럽다는 개념은 부드러움, 아름다움 같은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지만 그것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편견이다. 실제 소녀들은 다른 대답을 들려주었다. 씩씩하고 도전적인 응답을 보인 것이다. 캠페인은 소녀들에게 기대하는 당당한 자존감을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편견을 그대로 전달해서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즈가 2020년 봐야할 100권의 책에 선정한 '82년생 김지영'도 비슷한 관점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깨어나 동등한 사회 구 성원으로서의 성 역할의 기대감을 그려낸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서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동된다. 외자계 정유기업인 S-oil을 대행하기 위한 경쟁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다. 우리는 "앗살라무 알라이쿰"이라는 그들의 언어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것은 성실한 일처리와 성과로 그들과 한 몸이 되어 일하겠다는 약속과 의지였다. 실무 책임자인 나는 그들에게 제안한 '잘 나갑니다' Song 캠페인이 삼개월 후 거리에서 울려 퍼지지 않으면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해고하셔도 좋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성과를 측정해서 부족하면 광고비를 제작비에서 삭감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일정액의 보너스를 달라는 성과연동형계약(Bonus & Penalty Contract)을 추가로 제안했다. 대회의실의 정면에는 "Your success is Our success" 라는 마지막 인사말이 새겨졌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진검승부의 결과였다. 그들은 감동했고 우리는 기존 대행사와 두 곳의 경쟁사를 물리치고 프로젝 트의 주인이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확인하고 싶은 그들의 기대 심리를 잘 파악해서 대응한 결과였다. S-OIL 캠페인은 지금까지 제일기획에서 잘 진행하고 있고 그들의 파트너쉽은 여전히 단단하다.

인생도 기대감으로 가득한 묘약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몇 일 전 지리산 둘레길을 함께 다녀 온 친구는 일주일에 오만보를 걷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했다. 그러니 술 마신 날엔 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간다. 살을 빼고 두 다리를 튼튼히 해서 마음이 심약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대비하는 듯 하다. 또 다른 친구는 가성비 좋은 맛집과 와인, 좋은 책을 소개하는 파워블로거인데, 이제 영역을 지방으로 넓히고 있다. 다음 번엔 제주의 동쪽을 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나로 말하자면 공부하는 삶이다. 지식과 지혜를 얻어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은 내가 바뀌는 순간이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전의 내가 아닌 것이다. 공부란 죽는 날까지 생생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사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가 모이고 쌓이면 주위와 나눌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전파하고 보시하는 삶을 이어가려 한다. 이런 기대감으로 가득한 내일이 오늘의 좌표가 되고 의미가 될 것이다. 이 제 다시 해가 저물고 내일을 설계할 시간이다. 디지털과 코로나가 엉겨붙은 차가운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껴안고 위안과 위로를 건네며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지금 조금 삐딱해도 괜찮고, 부족해도 괜찮다. 그러나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라고 언제까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는 없다. 벽을 마주한 순간 그 벽을 버팀목으로 다시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생명력을 기억하자. 꿈이, 기대감이 우리의 운명을 인도한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