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모던타임스를 떠올리며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모던타임스를 떠올리며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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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유령진동중후군이라는게 있다. 전화나 문자가 오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리거나 진동을 느낀 것 같이 착각하는 현상이다. 지하철을 타거든 잠시 눈을 돌려 사람들을 훓어보라. 한결같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있다. 검색이든 통신이든 게임이든 액정속에 빠져든 것이다. 수년 전 스마트폰 중독증에 대해 결국 쓰는 사람에 달렸다는 내용으로 칼럼을 낸 기억이 있다. 속도가 경쟁력인 세상에 책은 고인 물과 같아서 스마트폰속의 친구들을 통해 지금 지구촌에 벌어지는 오늘의 사건을 얻어내는 능력을 키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속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잠자리에 들면 핸드폰을 치워두고 책을 집어든다. 물론 그들과 정보를 나누고 안부와 소식을 물으며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낮에 먹은 음식과 길가에 피어난 꽃 이야기도 하루 이틀이다. 그들의 일상을 두리번거라다 무심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찜찜했다. 그러다 잠자리에서만큼은 소셜미디어 활동을 끊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여기엔 인터넷 제국들이 사람들이 남긴 모든 흔적들을 기록하고 추척해서 그들의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영화 "쇼셜 딜레마"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는 에스키모인들의 비정한 늑대 사냥법을 마주친 일이다.  

에스키모인은 늑대를 잡기위해 칼자루를 얼음에 파묻는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끝 위로 싱싱한 큰 고기 덩어리를 꽃아 칼날을 감싸 얼음이 얼도록 들판에 내버려 둔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모여들고 얼음을 핥아내면 날카로운 칼날이 혀를 가르지만 감각이 둔해진 늑대는 핥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고통이 마비되어 혀가 잘려나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늑대는 칼날에 피가 흐르지만 멈추지 못한다. 마침내 깊게 갈라진 혀를 빼어 물고 눈밭을 붉게 물들이며 죽어간다. 날카로운 유혹의 덫에 걸려든 어이없는 죽음이다. 무언가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일은 늘 감미롭고 달콤하다. 도끼자루가 썩는 것도 모르는 것은 신선놀음의 중독성 때문이다. 중독은 감각의 문을 잠그고 이성을 차단시킨다. 에스키모가 숨겨놓은 칼날에 당한 늑대처럼 남들의 이야기를 기웃대다 금쪽같은 시간을 허공으로 날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괴감이다.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이 당신에게 어떤 것이였는지. 배고픈 것은 참지만 배 아픈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현대인들은 있는 자, 앞서가는 자, 강한자를 끌어내리는 재미로 사는 듯하다.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비난 댓글이 대표적이다. 학폭이든 뭐든 터지면 삽시간에 쌍방간에 말폭탄이 터진다. 계속되는 반박이 폭발력을 얻으면 숨죽이던 양진영의 호위무사들이 일시에 뛰어든다. 증오로 가득한 욕설과 인신공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진위는 안중에 없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때문이다. 중세 마녀사냥의 재림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시기심'으로 가득해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경계하며 대중 속에 파묻힌 겉치레의 삶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 속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의 삶을 제안했던 샤르트르조차 '나를 집어넣을 자리'를 마련하라고했다. 남을 따라가는 삶을 살지 말고 매순간 생각보다 행동으로, 과거보다 현재에 기준을 두는 삶을 선택하라고 했다. 니체가 주장한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과 거리감을 유지해야 차별적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지나간 시대의 고리타분한 교훈이라고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시계태엽에 말려들어간 인간의 운명을 그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기억하는가? 시도때도 없이 스마트폰의 세상을 기웃대며 자신의 시간을 날려버린다면 당신의 운명도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몰개성적인 그늘에 가려질 것이다. 

문제는 당신의 균형감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친구들이 보내주는 '좋아요'가 얼마나 쌓이는지 수시로 열어본다거나 그 갯수에 따라 기분이 좌우된다면 당신의 목에도 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봐야한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답례품처럼 그걸 주거니 받거니하며 서로의 인정 욕구를 채우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둔갑해서 방을 꾸미고 사람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자화자찬의 능글맞은 어투로 관심과 협조를 바란다며 미끼를 던져놓은 낚시꾼도 보인다. 마트에 굴러다니는 홍보물과 다르지 않다. 서로 돕고 살자는 이야기겠지만 순수한 연대와 결속과는 거리가 멀다. 당분간 소란스럽고 번잡스런 시장 한복판에서 하루를 마감하지 않겠다. 다시 스마트폰 친구들에게 돌아간다면 먼저 솔직하고 담담한 선의의 사연으로 내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의 응답 또한 순수한 우정에 다름아니라는 믿음이 확인된 후일 것이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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