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전사와 파트너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전사와 파트너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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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질문이나 지적에 대해 한사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프레젠터가 있다.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기존의 입장을 강변하며 반박하거나 논리적 헛점은 아랑곳없이 능청스럽게 자리를 모면하려 드는 부류다. 실패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는 강박증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마케팅에 정답은 없다. 가까운 답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고객이 찾는 사람은 확신에 찬 전사가 아니라 최후까지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 진지한 파트너다. 따라서 프레젠터가 내놓은 당장의 처방보다 그가 당면한 문제를 얼마나 잘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으며 그래서 나온 최선의 대안이 이것이라는 문제해결과정, 그 자체를 높이 살 것이다. 즉 “우리의 아이디어가 최고입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드리겠습니다”라는 조력자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관점은 우리 세대의 주인공인 MZ세대에도 통용될 듯 하다. SNS를 통해 누구와도 부담없이 가벼운 만남을 즐기며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추구하되 올바른 삶에 대해선 타인과 함께 결속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동성을 보이는 이들이다. 공동의 문제에 대해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하지 않고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협력의 방안을 찾는다. 일상에서 종교의 지혜를 들려주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마찬가지다. 우선 상대의 막연한 질문에 대해선 좀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상담자가 자신의 속내를 터놓고 말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심한 불안증을 겪는 이에겐 병원의 심리치료부터 받으라고 처방을 내리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의 기적만을 기대해선 안된다고 덧붙인다. 그 원인은 자신의 완벽증일수 있으니 좀 내려놓으라고 상대를 위로하며 인간적인 면모로 다가선다. 남탓이 심한 사람에겐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니 오히려 자신을 뒤돌아보라고 조언하는데 사실 자신도 그렇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여우가 되려 했던 곰의 이야기”를 통해 번민의 원인이 우리들 자신임을 깨닫게 한다. 이쯤되면 참석한 대중은 저마다 행복한 얼굴로 웃음과 박수로 화답한다. 스님의 이타불이(理他不二)의 설득술이 자신의 분별심과 이기심이 불행의 근원임을 깨닫게하는 순간이다. 세계적인 단체와 기업도 활발하게 공존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노르웨이SOS어린이마을(SOS Children's Villages Norway)" 프로젝트는 내전에 휘말려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는 시리아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 캠페인이다. 그들은 버스정류장에서 재킷을 잃어버리고 얇은 옷차림으로 떨고 있는 아이를 보고 사람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몰래카메라로 관찰했다. 조건없는 이타심을 실험한 것이다. 한 겨울 공원의 벤치에서 떨고 있는 소년을 만났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까?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 젊은 여성은 반팔을 감수하며 자신의 옷을 벗어주었다. 나이 든 한 남성은 장갑을 벗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옷을 벗었다. 수년 전부터 마케팅의 왕국 코카콜라도 '코카콜라와 함께하면 행복하다'라는 일방적 메시지에서 벗어나 '행복을 나누세요'라는 콘셉트로 바꾸어 광고한다. 그들의 캠페인은 그야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 드론을 이용해 고층빌딩에서 일하는 타국의 노동자를 위로하거나 친구나 동료들과 우정을 쌓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코카콜라를 통해 열대의 나라에 하얀 눈을 선물하고 이국땅의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 있다. 여기에 혁신의 아이콘 구글도 빠질리 없다. 사훈부터 "Do the right thing(좋은 일을 하는 회사가 되자)"이다. 초연결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해서 모두의 이익과 발전을 위한 기업이 되겠다는 결의다. 말대로 행동하고 실천한다면 지구촌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개인주의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여기에 백년만에 찾아온 재앙이라는 코로나까지 휘몰아치고 있다. 지구촌은 입을 막고 거리를 두고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 속으로 갇혀버렸다. 개인의 소외와 관계의 불신과 공동체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공동의 재난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동력이 될수있다. 화성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상황을 그려보라. 지구인 모두가 전선으로 나설 것이다.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문을 닫아걸고 자국의 이익을 쫒는 이기적 태도는 공멸의 구덩이가 된다. 서로의 문을 열고 정보를 공유하고 치료 시스템을 연결해서 공동의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초연결의 시대, 연결의 힘을 믿고 연결의 힘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타심이 이타심을 부를 것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이 관계의 중심에 서야한다. 이타불의의 설득법이 세상의 문을 하나씩 열어가고 있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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