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두괄식의 미덕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두괄식의 미덕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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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프레젠테이션기법을 강의까지 했던 필자도 장광설의 버릇으로 고생했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프레젠터 교육까지 맡다보니 말을 질질끌며 언변을 자랑하는 버릇이 습관이 됐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선배들의 따끔한 지적이 잇달았다. 상대의 말을 자주 끊고 자존심에 상처를 내서 관계마저 소원해지기도 했다. 쉽고 간결한 보고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멍석이 깔리면 돌변하는게 사람이다. 알맹이에 덕지덕지 살을 붙이고 변죽을 울리다가 오리무중에 빠지거나 삼천포로 새버리는 것이다. 

담배를 사오라고 시켰으면 사온 담배를 그냥 내어놓거나 다른 곳에서 사오느라 오래 걸렸다고 말하면 될 일인데 가는 길목에서 만난 사람과 들른 가게 이름까지 줄줄 늘어놓는 경우다. 시간을 잡아먹은 것은 둘째다. 문제는 이미지관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이 잘 풀린 경우라면 자화자찬이 되고 그르쳤을 경우엔 변명에 능한 핑계꾼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전달력은 상대가 듣고 싶은 내용만 드러내는 압축의 기술이다. 군더더기를 덜어내야 내용의 골격이 선명해지고 분명해진다. 당신의 상사가 가장 먼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일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그러니 그것부터 먼저 전달해라. 요약하면 두괄식으로 보고해라. 긴급한 메모 문서든 상황을 공유하는 리포트든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밝혀야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는 상황에 따라 붙이거나 생략해라. 

마스크로 입을 막고 거리를 두고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속에서 얼굴 표정과 음성만으로 옥석과 진위를 가려야한다. 핵심 내용만도 제대로 전달하거나 공유하기 쉽지 않다. 두괄식의 보고 요령은 상대가 불같이 급한 성격을 지녔거나 자신의 전문성이나 경륜을 확신하는 분이라면 두말할 필요없이 효과적이다. 결론부터 전하고 난 후 그의 반응을 살핀뒤 원인과 시사점, 향후 진행 계획을 덧붙여라. 협상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다. 테이블위로 협상조건부터 먼저 올려놔야 상대의 속내를 파악할 시간을 벌수있다. 쓸데없는 시간을 줄이고 반격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먼저 결과(Result)를 앞세우고, 그 원인(Cause)을 제시하고,시사점(Lesson)으로 마무리하는 삼단논법을 거듭 제안한다.

물론 두괄식의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의 결과부터 보고하는 것은 부실공사에서 보듯이 과정이나 근거를 살피지않고 성급한 판단으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상사를 얕잡아 보지말라. 선배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더 큰 책임의 당사자다. 결론만 보고서도 전체적인 상황과 당신의 입장을 헤아릴 것이다. 필요한 경우라면 틀림없이 질문할 것이다. 덧붙일 기회는 그때가 적기다. 성과가 충분하다면 겸양의 덕이 되고 미흡하다면 다음을 위한 결의로 비칠 것이다. 두괄식이 유익한 점은 또 있다. 인터넷 시대에 맞는 화법이다. SNS 세상에서 미주알고주알 따져가며 쓴 글은 환영받지 못한다. 거두절미하고 딱 한 문장만 쓰겠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으로 뼈대를 삼아라. 살은 그 주위에 붙여라. 내 경험으로 보면 두괄식의 근육이 붙어 승승장구하는 비지니스맨이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것은 스마트한 일처리와 성과와 결과를 책임지겠다는 결연한 태도에서 비롯된 듯하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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