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과 한국 광고

'오징어게임'과 한국 광고

  • 위정호
  • 승인 2022.01.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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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한류의 현주소와 한국 광고가 차용해봄직한 키워드

K-팝ㆍK-콘텐츠ㆍK-컬처…. 근래 들어 부쩍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ㆍ영화가 주목을 받으며 ‘K-00’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막상 미국에서는 K-00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나마 쓰이는 건 K-Pop 정도이고, 그마저도 아주 대중적인 표현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K-00’가 한국 광고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K-Ad’라는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한국 광고’가 세계광고계에서 자리매김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향 설정에 한류의 코드를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오징어게임 (출처 넷플릭스)

‘한류의 현실’과 좀 달랐던 <오징어게임>

분명 성공적인 순간들이 있었던 한류에 빗대어 한국 광고의 미래를 투영해보려면 먼저 한류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꽤 오래 살았고 한류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언론에서 포장하는 것 말고 냉정하게 ‘한류는 진짜 인기가 엄청난가?’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한류는 지금도 소수의 비주류 문화다. 물론 미국은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기에 소수의 비주류 문화도 대형 경기장 한두 개쯤은 쉽게 매진시켜버리는데, 그것이 미국 주류를 사로잡은 것이라고 본다면 잘못된 분석이다. 

더욱이 광고계는 현실적이며, 쉽게 속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광고회사들인 크리스핀 포터 + 보구스키(Crispin Porter + Bogusky)에서,하바스(Havas)에서, 디디비(DDB)에서 각기 다른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들 사이사이에 싸이나 BTS 등을 활용할 것을 제안해봤지만 당시 주변 반응은 엄청 차가웠다. 한국 광고에서 갑자기 어느 작은 나라의 유명 가수를 활용하자고 한 것과 같은 셈이다.

하지만 충분히 복기할만한 부분은 <오징어게임>이다. 정말 차원이 다르다. 지금처럼 남녀노소 국적불문 다 <오징어게임>을 언급하는 것을 BTS나 <기생충>에서는 볼 수 없었다. 

 

Quirky! 기괴하거나 괴짜스럽거나

BTS나 블랙핑크의 명성은 주로 아시아계 소녀 팬들에게서 볼 수 있는 팬덤의 영향이 크다. 거리를 걷는 미국인 상당수는 BTS나 블랙핑크를 잘 모르거나 들어본 정도이다. <기생충>은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영화 덕후들에게서 볼 수 있는 팬덤이다. 

<오징어게임>은 그것과는 다르다. 정말 모든 층의 사람들을 포섭했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디지털/소셜미디어 광고 쪽 업무도 하면서 평소 해외 소셜미디어를 많이 지켜보는데, <오징어게임>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며 복제+재생산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지에서는 2021 핼로윈 퍼레이드에 맞춰 가장 많이 문의된 소품이 <오징어게임>에 관련된 것이었고 검색횟수는 50,000% 증가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많은 공립학교에서는 핼로윈 복장으로 <오징어게임> 수트를 금지시켰을 정도였다.

물론 넷플릭스라는 어마어마한 보급체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오징어게임>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았을까? 

그것은 몇 십 년 전 일본의 ‘배틀로얄’에서 외국인들이 느꼈던 감정과 번지수가 크게 다르지 않으며,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들이 해외에서 ‘먹힌’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드보이>를 비롯한 몇몇 한국 영화들은 외국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위치를 잡고 들어갔다. 그로테스크하거나 을씨년스럽고 기괴함이 있는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10년 전쯤 어떤 미국인 CD가 한국 영화에 대해 “기괴하고 그로테스트(Weird and Grotesque)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지점이 인상 깊게 본 한국 영화들의 공통 코드이다. <오징어게임>의 인기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영화

 

대중문화의 한류 코드와 광고의 차이

이러한 코드를 광고에도 바로 대입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광고는 좀 더 보수적인 세상이기에 하나의 문화 코드로 퉁치기엔 제약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음악이 지니는 몇 가지 속성과 광고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첫째, 드라마나 영화·음악은 틈새시장(Niche)이 존재해도 좋다. 하지만 광고는 틈새시장에 그렇게 의존할 수가 없다. 광고주가 특정 집단에게만 판매해도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최대한 다수에게 어필해야 하는 데 반해, 드라마나 영화·음악은 꼭 절대 다수를 잡지 않아도 특정 사생팬이 생기는 이상 유지가 가능하다. 

둘째, ‘시간 싸움’ 차이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활용한 콘텐츠는 신선함이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나 영화는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반면 광고는 그렇지 못하다. 15초·30초짜리 광고라면 더더욱 그렇다.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의 약점이 드러난다. 

셋째, 드라마나 영화·음악은 미디어를 이용한 스스로의 홍보가 가능하다. 타임스퀘어 공연을 성사시키고 미국의 여러 채널에 얼굴을 비춰주면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빌드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광고는 그런 ‘사치’의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인을 짜고 그 기본 틀 위에 한국적인 것, 기괴함이나 괴짜스러움이 들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한류를 등에 업어보겠다고 그걸 따라 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폭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류적인 느낌의 광고…

해외 광고업계에서 일본의 광고는 좀 기이하고 핀트가 살짝 안 맞는 것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나 (한국식 표현으로는) ‘병맛’ 느낌이 많이 드는데, 그런 것들이 세계적 광고제에서는 그다지 높게 취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좀 덜 들어가도 되는 디지털 광고나 디자인 분야는 일본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이 빛을 발해 인정을 받는다. 

태국의 광고는 종종 감성적 광고를 많이 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태국이나 싱가포르 광고는 실제 집행되지 않은 (광고제에 출품하기 위한) 광고를 많이 제작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아졌다. 또한 태국 광고의 감성코드는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만 미국 쪽에서는 억지 눈물이라고 폄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광고는 이런 점들을 참고할 만하다.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 광고는 최근 트렌드상의 한류적인(굳이 ‘한국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느낌이 살아있다. 흥겨운 음악과 춤, 창법이 들어간 모던 비트가 어우러져 외국인들이 한류 작품들에서 느껴왔던 좀 괴짜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광고가 나왔다. 

몇 년 전엔 SSG 광고 캠페인의 컬러감이 좋다고 여러 군데에서 비슷하게 따라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의 룩(Look)을 대놓고 따라하며 복제하는 건 피해야 한다. 시각적인 측면만을 가이드로 삼을 수 없고, 모든 광고를 떼창과 군무를 추는 사람들로만 채울 수는 없으니까.

타국에서 광고인으로 생활하며 겪어본 한류의 장단점을 통해 앞으로 한국의 광고가 나아가야 할 지점을 찾는다면 ‘콘텐츠의 신선함과 기발함이 어우러지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다. BTS나 손흥민을 활용했다고 ‘한국의 광고, K-Ad’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광고’라고 하면 기괴하리만치 기발하고 독특한 접근방식을 가진 광고들이었으면 좋겠다. 

 


위정호 DDB New York ACD

※ 본 아티클은 한국광고산업협회 발간 <디애드> 칼럼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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