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里仁〕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나

〔카페★里仁〕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나

  • 장성미 칼럼리스트
  • 승인 2020.05.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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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非花, 霧非霧(화비화 무비무) 꽃 이였나, 안개 였나

夜半來, 天明去(야반래 천명거) 한밤중에 와 새벽 오니 가버렸구나

來如春夢幾多時(래여춘몽기다시) 봄날 꿈처럼 잠시 왔다가

去似朝雲無覓處(거사조운무멱처) 아침 구름처럼 자취도 없이 가버렸구나 <花非花>/白居易

지금 산과 들이 봄의 색을 한껏 머금고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이 찬란한 계절과 다르게 봄날 꿈처럼 너무나 짧은 삶을 살다가 간 사랑하는 사람이 그립고 그리워서 한 시인이 천 년도 더 전에 애달아 하며 불렀던 이 만가(挽歌)가 자꾸 떠오른다.

아마 예상치도 못하고 형체도 없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도 모르는 무도한 침략자 ‘코로나-19’로 인하여 참담한 현실의 한가운데를 살얼음판처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앞에 사랑하는 이를 준비도 없이 갑자기 떠나 보내야만 했던 세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보(悲報)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친구가 찾아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반갑게 만났고, 한참을 못 보던 가족을 만나면 역시 기뻐하며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런 우리의 일상(日常)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정해야 하고 거리를 지켜야 하고 게다가 긴 시간 못 보던 사람을 만나는 일은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사람이 사람을 편하게 만나던 우리네 정겨운 삶은 점점 옛일이 되어가는 듯하고, 이제는 경각심(警覺心)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고 만남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 아직도 생경(生硬)하고 어설프다.

심지어 사람들의 모임도 자유롭지 못하고 출입장소도 제약을 받아야 하고 어느 기관을 방문하는 사람은 개인기록을 남겨야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이제는 대중교통도 이용 할 수가 없는 이 현실 생활이 무척 쓸쓸하고 허허롭다.

요즘 누구나 잃어버린 ‘코로나-19’ 이전의 익숙했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상실한 자유의 시간이 절절히 그리워 엄중한 지금의 상황을 망각하고 일렁이는 욕망대로 행동하고 싶기도 하다. 특히 피가 뜨거운 젊은이들은 더욱 그런 유혹을 잠재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참 전에 겨울방학이 이미 끝나고 계절이 자꾸 바뀌어 가는데도 아직 학교를 제대로 못간 채 집안에 머무르며 비대면(非對面) 상태로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 저 학생들을 걱정해 보자.

그리고 아직은 성장하며 배워야 하는 그들이 교정을 자유롭게 거닐며 활기차고 안전하게 배움의 시간을 돌려 받을 수 있게 우리 모두가 양보의 마음을 모으고 배려의 생각을 펼치는 이타심(利他心)의 빛을 발해 절제된 생활을 실천하여 학생들이 등교 할 수 있게 해주자.

‘코로나-19’ 이후 인류의 세계는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참 혼란스럽고 무슨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다만 현재 온 세계는 백신과 치료제가 속히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 특별한 방도가 아직은 없다. 그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소극적인 대처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철저하게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하기 개인위생 철저히 실천하기 외에는 특별한 대책도 없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모두의 인내와 노력으로 방역의 효과가 잘 조성되어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회복을 꾀해가는 희망찬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방심하였더니 ‘이태원 클럽’으로 부터 또 다시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산되기 시작하니 한동안 우리를 긴장하게 하던 ‘신천지의 악몽’이 섬찟하게 되살아난다.

게다가 기침, 두통, 고열, 마스크, 봉쇄, 우한(武漢), 확진, 감염병, 증상, 방역, 소독, 피해, 금지, 방안, 죽음, 슬픔, 거리두기, 밀폐, 제한……… 이런 단어가 뇌리에 시시각각(時時刻刻) 난무하며 허망하고 힘겹게 한다.

이 어둠이 드리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시대를 지나가는 삶 앞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이름의 깃발을 치켜들고 욕망을 향하여 내달리며 이기심(利己心)에 매몰(埋沒)되어 공동체(共同體)의 생명과 안전을 무모하고 어리석게 파괴하는 절제력이 상실된 망동(妄動)만은 제발 저지르며 살아가지 말자.

 


장성미 C플랫폼 준비위 사무국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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