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긍정적 열광 이면의 진실이 갖는 힘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긍정적 열광 이면의 진실이 갖는 힘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8.11.13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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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196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 전쟁을 두고 미국인들은 찬반으로 갈려 내부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흑인들의 민권 투쟁을 둘러싼 갈등도 20세기 판 남북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까지 갔다. 장발에 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른 청년 남성들과 브래지어를 불태운 젊은 여성들이 마약에 취하여 록큰롤 음악에 몸을 흔들어댔고, 한쪽에서는 락밴드의 LP판을 불태우고 기독교 성령운동의 불길을 피우는 윗세대들이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교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했고, 오하이오주 켄트대학에서는 출동한 주방위군이 학생들에게 실탄사격을 가했다.

그런 혼란의 시대에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미국의 중심을 잡는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나 교직원들은 국가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위기 속에서, 하버드 로스쿨이 선두에 서서 법과 질서를 지탱한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격동의 시기의 한 중간에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졸업식이 열렸고, 학생 대표가 연설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 전국의 거리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가는 반란과 난동을 부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은 이 나라를 파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무력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요? 그렇습니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들끓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이 나라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The streets of our country are in turmoil. The universities are filled with students rebelling and rioting. Communists are seeking to destroy our country. Russia is threatening us with her might. And the republic is in danger. Yes! danger from within and without. We need law and order! Without law and order our nation cannot survive.)“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참이 지나 박수 소리가 좀 가라앉았을 때, 연설을 하는 학생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제가 한 말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했던 것입니다.”

졸업식장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은 가지만 당사자들의 충격 정도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위의 연설을 듣던 교수나 가족들 중에는 2차 대전에 참전한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히틀러는 주적으로 싸웠던 악의 화신이었다. 그런데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철천지원수의 말에 찬동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낸 자신을 봤을 때의 당혹함만큼이나, 연설의 충격과 설득력은 강렬했을 것이다.

당시 하버드 로스쿨의 졸업식에 모인 청중의 대부분은 기득권 중의 기득권에 속했다. 정권의 폭압보다 무질서의 혼란이 이들에게는 더 무섭다. 극한의 공포 상태에 있으니, 법과 질서에 앞서는 인간의 기본권 보장과 같은 소리가 먹힐 수가 없다. 옳은 말이라고 정공법으로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반발만 더욱 강력해질 뿐이다. 돌아서 두드리며 반전을 꾀해야 한다.

손자병법에 ‘차도살인(借刀殺人)’이란 계책이 있다. 다른 이의 칼을 빌려 적을 죽인다는 말이다. 연설한 학생에게 청중들을 적이라고 하면 표현이 심하기는 하지만, 이 연설에서 칼은 적의 적이 소유한 무기였다. 그게 적의 것인지 모르고 반겨 맞았다가 찔렸으니 더욱 아프다. 먼저 긍정과 환호를 이끌어내라.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면의 실상을 보여줘라. 그들의 붕괴된 믿음 위에 반전의 꽃이 핀다.

※ 위의 에피소드는 <미국민중사>로 유명한 하워드 진(Howard Zinn)의 <Declaration of Independence:Cross-Examining American Ideology>-한국에는 <오만한 제국: 미국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으로 번역, 출간)-에서 발췌했으며, 번역은 김민웅 경희대 교수의 저서 <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한 문명사적 반론>을 참조했다.

박재항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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