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틈의 미학’ - 월드컵을 보다 생각난 축구와 광고

‘빈 틈의 미학’ - 월드컵을 보다 생각난 축구와 광고

  • 유안드레아
  • 승인 2023.0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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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erdinand Stöhr on Splash
Photo by Ferdinand Stöhr on Splash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만약 모든 선수가 완벽하게 플레이한다면 스코어는 영원히 0:0 일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축구 영웅 미셀 플라티니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축구라는 스포츠는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22명 중 누군가로부터 비롯된 ‘빈 틈’으로 인해 균형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상대에게 자신들의 골문을 열어주며 비로소 승부가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현란한 드리블 돌파에 의한 득점은 바꾸어 말하면 수비수의 대인 마크 실수이고, 허를 찌르는 공간 패스에 의한 득점은 뒤집어보면 수비 배후 공간을 허용한 존 디펜스 실패와 다름없는 셈입니다. 

‘명장’의 역량이 발휘되는 지점이 있죠

이처럼 축구가 실수와 실패에 관한 스포츠일진대, 대부분의 축구감독들은 경기에 임하기 전 항상 완벽한 전술을 계획합니다. 감독의 전략·전술 수립 과정은 마치 흩어진 퍼즐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포메이션의 구성, 팀 전술과 부분 전술의 수립, 그리고 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라인업의 조각까지…. 

축구경기의 전체 과정 중 어느 한 구석이라도 감독의 의도와 계획이 미치지 않는 빈 틈이 있어서는 안 되고, 마지막까지 치밀하게 그 빈 공간을 발견하고 채워 나가는 것이 감독의 일입니다. 클럽 감독이든 국가대표 감독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팀을 맡은 감독에게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축구에서의 승부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고, 강팀이라고 해서 항상 승리하는 것도 아니니 그 계획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축구공은 둥급니다. 

축구공이 둥근 이유는 상대 감독도 항상 완벽한 전술을 계획하는 까닭입니다. A 감독의 완벽한 전술과 B 감독의 완벽한 전술이 부딪히는 일종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구는 상대적인 것이고, 따라서 완벽한 계획이란 대체로 성립하지 않는 명제가 됩니다. 감독의 역량은 90분 내내 시시때때로 돌발하는 예측 불가능한 빈 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위 ‘명장’이라 불리는 축구감독의 역량이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스스로의 빈 틈을 재빨리 발견하고,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반전의 카드를 꺼내는 것!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일본 대표팀이 보여준 후반전의 반전 경기력과 두 번의 대역전극이 대표적입니다. 

왜 축구감독의 연봉이 높을까요?

허나, 축구감독에게는 이 빈 틈을 메울 기회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9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불과 3장, 많아야 5장에 불과한 교체 카드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 합니다. 물론 그 일을 잘 해내는 감독은 유명 선수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연봉은 2,500만 달러가 넘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 역시 2,0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습니다. 

반면, 9이닝이라는 긴 경기 내내 적게는 수 회, 많게는 수십 회 작전 변경과 선수 교체의 자유도가 주어지는 야구감독은 연봉은 생각보다 형편(?) 없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감독 최고 연봉은 650만 달러 수준입니다. 감독이 경기에 직접 개입하는 일, 그러니까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소위 ‘작전’이 들어가는 경우는 축구보다 야구가 훨씬 많긴 하지만, 경기에서 발생하는 빈 틈을 메워 승부의 향방을 바꾼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야구감독의 한 수(手)보다 축구 감독의 한 수가 더 귀합니다. 즉, 감독으로서의 가치는 축구에서 훨씬 더 높게 쳐주는 셈입니다. 

그리고 축구 팬은 이러한 빈 틈이 완벽하게 메워지는 바로 그 순간에 열광합니다. 대한민국의 카타르월드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16강에 진출한 상대 선수들이 멘털과 체력에 빈 틈이 생긴 후반 종료를 앞둔 바로 그 순간, 저돌적 돌파력을 지닌 ‘황소’ 황희찬을 투입해 우리나라 월드컵 역사상 가장 짜릿한 16강 진출의 반전 스토리를 만들어내고야 만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
러니 어찌 축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광고 마케팅도 빈 틈을 발견하고 메워나가는 일입니다

작은 변수의 축적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축구에서의 계획처럼 인생의 모든 일은 나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세상사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의도하지도 않은 수많은 상대적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예측 불가능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의 업(業)인 시장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뜻대로 시장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저명한 마케팅 컨설턴트이자 포지셔닝 이론의 창시자 잭 트라우와 알 리스는 그들의 명저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예측 불가능의 법칙(The Law of Unpredictability)’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법칙을 요약하면 마케팅이란 결국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닌 상대와의 수 싸움이므로 상대의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나, 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어딘가 숨어 있는 빈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효과적으로 메워 나가면서 성공적인 브랜딩과 캠페인을 이끌어 나갈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희열과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니 어찌 이 광고 일을 계속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안드레아 HS애드 DX추진팀 팀장

※ 본 아티클은 한국광고산업협회 발간 <디애드> 칼럼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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