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21세기형 ‘빙조련’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21세기형 ‘빙조련’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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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국제 빙설제 (출처 China Discovery)
하얼빈 국제 빙설제 (출처 China Discovery)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이번 주 금요일(1/5) 중국의 하얼빈에서는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Sapporo Snow Festival)', 캐나다의 '퀘벡 윈터 카니발(Quebec Winter Carnival)'과 함께 세계 3대 겨울 축제 중 하나라는 '하얼빈 국제 빙설제(哈尔滨国际冰雪节)'가 열린다. 원래 얼음을 쪼아 조각상을 만들고, 거기에 조명을 비추고, 손님들을 불러 함께 감상하며 노는, 겨울이 혹독하게 춥고 긴 하얼빈의 전통 세시풍속 중의 하나인 '빙등 원유회(冰燈園遊会)’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명을 비추지 않은 ‘얼음조각상’ 자체를 한자로 쓰면, 뜻 그대로 옮겨서 ‘빙조(冰雕)’라고 한다. 그래서 ‘빙조련(冰雕連)’이란 한자 ‘이을 련’이 뒤에 붙은 낱말을 처음 봤을 때, 하얼빈에서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줄지어 서 있는 얼음조각상들이 연상되었다. 실상은 그런 축제와는 거리가 먼 아주 참혹한 역사를 담고 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전의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한국군과 미군은 38도선을 넘어 10월 말에는 만주가 보이는 압록강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다. 자신에게도 위협이 되리라 판단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지원군(이하 중공군)이라고 이름 붙인 병력을 이미 10월 중순에 한반도로 보내서 10월 말에는 산악에서 게릴라전 형태의 기습공격을 펼쳤다. 전형적 ‘치고 빠지기’처럼 11월 초에는 모습을 감추었다가, 11월 말의 미국 추수감사절을 전후하여 일제히 공격 태세로 전환하여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형의 한반도 서부 전역에서는 미군과 한국군이 극심한 초반 타격을 입고 궤멸 상태로까지 빠졌으나, 나름의 기동력을 발휘하여 쫓아오는 중공군보다 빠르게 후퇴할 수 있었다. 험준한 산악의 함경도 지역에서는 약 1만 명 병력의 미군 해병 1사단을 중심으로 한 약 3만 정도의 미군이 15만 명 이상의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먼저 일제 강점기에 축조된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라는 부전고원의 장진호 주변에서, 이후 황초령에서 흥남까지 100킬로미터가 넘는 산악을 낀 도로 주변에서 밤낮없는 전투가 약 보름간에 걸쳐 벌어졌다.

총포탄으로 살상된 인원보다 더 큰 피해를 양쪽에 준 무시무시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섭씨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였다. 특히 미군보다 보급 상황이 열악한 중공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미 해병사단을 포위한 중공군 9병단의 병사들은 만주 지역의 중공군 부사령관이 "너희가 이렇게 한반도로 들어가면 싸우는 건 고사하고 얼어죽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내뱉게 할 정도로 방한의복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장진호 전역에서 중공군은 약 3만 명이 동상을 입고, 4천여 명이 동사하는 사태를 빚었다.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동사자들이 바로 ‘빙조련’이었다.

‘빙조련’에서의 ‘련(連)은 군대 편제 중 한 단위로, 우리로 치면 중대를 가리킨다. 장진호 전투 초반인 11월 말 미군 해병대를 산기슭에 매복해 있다가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중공군 중대가 있었다. 작전대로 미 해병대가 중공군의 총구가 빼곡히 노리고 있는 골짜기로 들어섰는데, 총알 한 발 발사되지 않았다. 미 해병대의 이동이 지체되고 원래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매복지에 도착하며, 영하 40도의 눈보라 속에서 엎드린 채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중공군 1개 중대원 전체가 그대로 얼어 죽어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언제부터인가 ‘빙조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빙조련이 상징하는 의미가 지난 10년 사이 달라진 걸, 중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이전의 대략 2010년 초까지 중국에서는 장진호 전투를 승리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중화인민공화국 10대 원수 중의 한 명은 이렇게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나의 병단이 한 개 사단을 포위해서, 거대한 대가를 치른 후에도 적을 섬멸하지 못하고, 적을 궤멸시키지도 못했다. 적은 편제를 갖추어 전투에서 철수했고, 모든 장비와 부상병까지 데려갔다."

그런데 "패배를 승리로 만드는 반전(反敗爲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적보다 10배 이상의 사상자를 기록했지만, 어쨌든 적을 밀어냈으니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조류가 대세가 되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면서 중국 문화 콘텐츠에서 빙조련을 다루는 방식도 바뀌었다. 2010년대 초에 기획되고, 2016년에 방영하기 시작한 TV 드라마 <펑더화이원수(彭德懷元帥)>에서는 빙조련을 피난 가는 북한 주민이 발견한다. 어지러이 엎어지거나 허공을 바라보며 다양한 형태로 얼어버린 시신들을 보면서 북한 피난민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 드라마에서 빙조련은 전쟁의 참혹함을 부각하는 소재였다. 이후 우리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2021년 중국에서 개봉하여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국책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장진호>에서는 미 해병사단장인 올리버 스미스(Oliver Smith) 소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전투지를 돌아보다 빙조련을 만난다. 끝까지 버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한 시신의 손에 끼워져 있던 메모까지 본 미군 사단장은 ‘우리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중공군 병사들의 정신을 찬양하며 부하들과 함께 빙조련을 향해 경례한다. 물론 실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중국의 고조되는 ‘혁명영웅주의’적 사회 조류 속에, 그 표상으로의 빙조련을 극적인 형태로 연출한 장면이었다.

그런 행태에 반발하고 비꼬는 이들이 중국이라고 없을 수 없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소리를 곧잘 내는 신경보(新京報)의 선임기자이자 심층보도팀 주필이었던 뤄창핑(羅昌平)은 <장진호> 영화의 흥행 돌풍이 일던 2021년 10월 자신의 웨이보에 “반세기가 지났지만, 전쟁의 정의(正義)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다”라며 “마치 ‘모래조각상(沙雕瞼)’이 상관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는 문구를 띄웠다. ‘얼음조각’의 ‘빙조’를 ‘모래조각’이라는 ‘사조(沙雕)’로 바꾸었다. ‘모래조각상(沙雕瞼)’이 중국어로는 물정 모르는 사람을 놀리는 ‘바보’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이니, 풍자 효과를 내는 절묘한 반전 표현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빙조련은)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금자탑이다. 극도의 추위에 사망한 순교자들을 비방하고 모욕해선 안 된다”라는 식의 자칭 애국주의자의 비판이 나온 건 당연하다.

국수주의로까지 치닫는 분위기에서, 21세기형 빙조련이 올해 하얼빈을 장식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든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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