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선생님만 울리세요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선생님만 울리세요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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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흰 티셔츠 위에 같은 색의 얇은 재킷을 걸치고, 까만 작은 색을 멨다. 거기에 청바지이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40대 말에서 50대 초로 보이는 여성이 1인 시위를 하듯 서 있었다. 곧 그는 결연한 표정과 자세로 종이 몇 장을 펼쳐 들고,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대여섯 발 떨어져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양복 정장을 입고 가지런히 손을 모아 배꼽 인사를 하는 자세였는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옆의 키가 큰 다른 사내는 넥타이만 두르지 않은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이었다. 주위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키 작은 사내보다는 복장 탓인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둘 다 근심스러우면서도 경계 어린 눈빛과 몸짓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의 약자 코스프레에, 정작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는 전국의 59개교 간호과 8,000여 명의 학생들이, 교육부는 진정 보이지 않으십니까?’

보건/간호 계열 특성화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가 세종시의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 형태의 항의를 하면서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선생님의 눈물’이란 제목에 ‘전국특성화고간호교육교장협의회’와 ‘고등학교간호교육협의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 명의가 영상 아래에 자막으로 달려 있었다. 성명서는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필수인 실습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 고교 시절 4번의 방학을 반납하고 병원에 다니는 아이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가정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 병원까지 걸어 다녀야만 하는 실습생들을 언급하면서 교사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 제발 교육부가 나서서 개악을 막아 달라는 호소로 성명서 낭독을 마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설프게 찍은 위의 동영상을 보냈다며 어느 의료 관련 특성화고등학교의 선배가 전화했다. 마침 그때 영국 출장 중이어서 아주 이른 새벽에 잠을 자다가 받았다. 간호법과 함께 개정하려는 간호조무사 관련한 규정에 항의하는 특성화 고등학교의 의견 표명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알릴 예정이라고 했다. 영상을 효과적으로 알릴 방법과 함께 제목을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견광고 형식으로 신문에도 실을 예정이라고 했다. 출장 중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 선배가 학교 제자들을 위해 온몸을 바쳐서 노력하는 모습을 봐 왔기에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항의문을 읽으며 학생들 얘기를 할 때 선생님이 흘리는 눈물이 가슴 아파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일었다.

12시간 안, 곧 한국 시각으로 다음 날 조치를 취할 수 있게 생각을 정리하여 보내겠다고 약속하고는 동영상을 다시 봤다. 선생님의 눈물에 담긴 진정성이, 가슴을 아리게 울렸다. 그러나 삐죽 서 있는 두 명의 사내에 차량이 지나가는 등 스마트폰으로 마구 찍은 영상인지라 현장성은 있다고 하겠지만, 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집중하게 만들기는 힘들었다. 낮 출장 업무를 보면서 짬짬이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여 메모로 써서 보냈다. 헤드라인도 메모에 담았다.

주말에 귀국했는데, 월요일 아침에 선배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다. 내가 준 헤드라인과 카피대로 신문광고를 만들었고, 광고를 실은 신문사 사람들이 칭찬까지 했단다. 광고가 실린 pdf 판 지면을 보내주었다. ‘선생님의 눈물’이란 제목이 약해 보이니 대체했으면 좋겠다며, 설마 그대로 하랴 싶은 생각에서 제출 여부만 따지는 과제 내듯 전달한 문장이 크게 보였다.

“선생님만 울리세요.”

대부분의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은 언제라도 울 수 있는 분들이다. 학생들의 눈물은 선생님을 울게 만든다. 뒤집어 보면 선생님들의 눈물이 또한 학생들을 울게도 한다.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그들이 울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뒤돌아 흘리는 눈물을 뿌리는 선생님의 광고가 나온 그날이 마침 스승의 날이었다.

광고가 나가고 6개월 가까이 지난 최근에 내게 광고를 의뢰했던 선배를 만났다. 간호법 관련한 사태의 추이를 물으니, 예의 호방하지만 신중하고 단호한 투로 말했다.

“말이나 행동 하나로 바뀌지는 않지. 계속 노력해야지.”

그래, 선생님의 눈물로 학생들이 울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 선생님들도 울 이유가 없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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