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도서관의 폐기 도서와 중고책방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도서관의 폐기 도서와 중고책방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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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출판사 ‘열린책들’의 편집이사를 지낸 도서 전문가 김영준이 2023년의 주목할 만한 도서관 뉴스 두 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5월에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재테크 관련 도서 구매 요청을 더는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 결정이었다. 책을 구매하는 데, 특정 분야의 도서가 5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영준은 일차원적으로 사람들이 혀를 차는 세태 두 가지를 든다. 첫째, 도서관 이용자들조차 재테크에 몰두하는 세태. 둘째, 재테크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세태. 충분히 생각할 만한 현상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전의 질문을 던진다.

‘왜 재테크가 아닌 다른 분야의 책 구매 신청은 저조한가?’ 이 질문에 처가 자신의 가설을 내놓았다. 첫째, 사람들의 가장 주요한 관심이 재테크에 쏠린 건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올해 하반기에 쇼펜하우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재테크만큼 사람들이 절실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둘째, 재테크 책은 소장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좋은 책이라고 느끼면 두고두고 읽거나, 최소한 간직은 하려고 직접 구매하게 된다. 재테크 책들은 혹시 뒤처지지 않을까, 잃는 것은 없을까 싶어서 확인하는 정도의 목적을 위해 읽는 책이라 굳이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체크하는 수준이면 된다는 얘기다. 나의 가설을 하나 덧붙이자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들의 인구통계학적 속성, 곧 나이와 가구 수입 등을 고려할 때 재테크에 더욱 신경쓰는 그룹이 아닐까 싶다.

도서관 관련 또 하나의 주목할 뉴스는 울산대 도서관에서 45만 권의 장서를 폐기하려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폐기한다는 게 충격이라는 반응에 이어, 책을 그리 홀대하고 폐기하니 책을 읽지 않는 것 아니냐는 닭과 계란형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폐기 대상 도서를 선정하는 방식이 당연히 있었다. 학과에서 따로 명단을 제출하기도 하지만, 도서관 내에서는 10년간 대출 실적이 1회 이하인 책들이 1순위 폐기 대상이라고 한다. 한정된 공간에 새로운 책들이 들어와야 하니, 오래되고 아무도 보지 않은 책들부터 치워야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그런 책들에 보통 명저니, 고전이니 해서 손꼽는 책들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문제이다.

어쨌든 개탄스럽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니 울산대에서는 계획을 수정해서 각 학과에서 보존 희망 도서 명단을 받아, 원래의 폐기 도서 중 17만 5천 권 가량을 보존하고, 27만 6천여 권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 등에 이관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내 구성원들에게 원하는 책들을 가져가게 할 계획이고, 그래도 남은 책들은 소각 방식으로 폐기한다고 11월에 발표했다. 학내 구성원들이 가져다 읽고, 중고책방으로 풀리고 하는 식으로라도 책들이 살아남으면 좋겠다.

1990년대 초 미국 뉴욕시에 살면서, 집 근처에 중고책방이 있어 드나들다가, 뉴욕시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이라는 스트랜드 북스토어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후 해외 대도시에 가면 중고책방을 일부러라도 찾아서 들른다. 집에 있는 영어책 중의 반수 이상은 중고책방에서 산 것들이다. 그중 아끼는 책이 있다. 201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참관 출장 후에 실리콘밸리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팰로 알토의 트렌드 연구 기관에 회의하러 갔는데, 그 기관이 있는 빌딩 앞 건물 1층에 중고책방이 있는 게 보였다. 꼭 서점 때문에 일찍 끝낸 건 아니지만, 회의 후에 잠깐 서점에 들를 시간 여유가 생겼다.

주인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니 1935년부터 자기 장인이 서점을 하기 시작했단다. 유서 있는 곳이었다. 1900년에 찍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중국인 사진이 실린 <American Heritage> 1978년 12월호를 샀다. 뒤쪽에 영수증을 끼워주는데 보니, 원래 그 인근에 이는 스탠퍼드 대학교 도서관의 소장 도서였다. 1980년 6월 8일이 반납기일이라는 딱 한 번 대출된 듯한 기록이 대출 표에 있었다. “원래 스탠퍼드에 있던 책이군요”라고 감탄 조로 말하자, 책방 주인 영감이 받았다. “요즘 애들이 이런 책을 왜 읽겠어요.” 이 책도 이후로 대출되지 않으니, 폐기 우선순위에 들어서 이렇게 밖으로 흘러나와 한국 서울에까지 오게 된 것일까. 중고 책에는 이런 역사와 이야기들이 있다. 언젠가 울산대 도서관 직인이 찍힌 책들도 만나길 바란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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