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온열의자에 무슨 일이?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온열의자에 무슨 일이?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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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겨울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따뜻한 온기를 기대하며 긴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게 이제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친근한 투로 줄여서 ‘엉뜨’라고 부르기도 하는 온열의자 덕분이다. 얼추 조사해 보니 버스정류장 온열의자는 서울시 서초구에서 2017년에 간이 천막 형태의 추위 가림막과 함께 처음으로 설치한 것 같다. 여름철 신호등 건널목에 설치한 햇빛을 피하는 파라솔과 함께 서초구의 대민(對民) 서비스 히트 상품 중의 하나였다. 특히 내 주위에서는 몸이 차서 고생하는 중장년 여성들과 임산부들이 아주 좋아했다. 갱년기를 지나며 체질이 바뀌었다는 한 여성은 여름철에도 햇빛으로 달구어지다시피 한 자동차 시트에 앉는 게 좋다고 할 정도이니, 추운 겨울철의 온열의자가 얼마나 반갑고 긴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연말 서울 압구정동의 시내버스 정류장의 온열의자에 앉으려는데 의자 위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서울시 전 지역 버스 정류장에 무선 WI-FI, 터치스크린 등의 디지털 사이니지를 포함하여 다양한 옥외광고를 시행하는 회사 명의였다. 버스 정류장의 온열의자까지 그들이 설치하고 관리하는 줄은 몰랐다.

“온열의자는 작동하지 않으나

햇빛과 날씨 등의 영향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느끼실 수 있으니

이용에 참고해주시길바랍니다.”

안내문 자체와 문구 내용을 보고 의문이 몇 가지 들었다.

첫 번째 의문. 위에 쓴 대로 이제는 온열의자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인데, 압구정동에서 내가 만난 의자는 시대에 뒤처지게 온열의자가 아니란 말인가? 문장 첫머리 주어가 온열의자인데 그 온열의자는 왜 작동하지 않을까? 의자에 앉았더니 작동하고 있었다. 실제 작동하는 것을 두고 굳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로 작동하지 않는데 작동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건 무슨 이야기일까? 햇빛과 날씨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영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작동을 하든 안하든 따뜻하게 느끼면 좋은 게 아닌가? 뭔가 불만이 제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셋째, 이용에 어떻게 참고해야 할까? 온열의자가 따뜻한데, 작동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해야 한다는 뜻인 듯싶은데, 영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저렇게까지 안내문을 의자 위에 붙여야 하는 이유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위의 사진에서는 기업명을 모자이크로 가린 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옥외광고 기업으로 잘 아는 곳이었다. 그곳 친구에게 사진을 전송하면서 그런 안내문을 붙인 이유를 물었다. 이런 대답이 왔다.

“여름에 온도 때문에 온열의자가 켜져 있는 줄 알고 전기낭비라고 민원이 들어와 붙여 놓았다고 하네요.”

이런 경우까지 불만이나 민원을 제기하는 부지런함이 놀랍다. 소비자 자신과는 어찌 보면 직접 연관은 없지만, 국가 경제를 생각하는 성실한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보다는 이런 고객의 목소리에까지 대응하는 해당 업체 친구를 칭찬했다.

이런 소비자의 목소리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런 불만에 찬 소비자는 계속 나쁜 얘기를 전파하게 되고, 개중에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당 경우는 결국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거짓 비방이 긍정 소식을 뒤덮어버리게도 된다. 그런데 안내문은 좀 명쾌하게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긴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 길어져서 사람들이 내용을 읽지 않을 확률이 커질 우려가 있기는 하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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