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창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NIV 성경에는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태초에 하나님이 점심을 드셨을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셨을 수도 있는데 굳이 ‘창조’라는 걸 하신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창조’ 혹은 ‘Creative’라는 개념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순서로 크리에이티비티를 펼치신다.
먼저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신다. 즉, 스토리텔링부터 시작하신다. 그다음에는 ‘하늘’ ‘땅’ ‘바다’ ‘꽃’ 같은 이름을 만들어 붙이시는 네이밍 작업을 하신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나온다.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즉, 하나님이 디자인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2장 7절,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이는 그래픽 디자인 이후의 코딩과 엔지니어링 작업이다. 그 결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산출물이 탄생했다.
놀랍지 않은가? 스토리텔링부터 시작해, 네이밍, 디자인, 엔지니어링을 거쳐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자찬하는 완성물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가 작업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더 흥미로운 사실 하나. 하나님은 아담이라는 첫 번째 산출물을 창조한 후, 곧바로 이브를 ‘베리에이션’ 하셨다.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작업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이 산출물들은 곧 문제를 일으킨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금지를 어기고 ‘선악과’를 '훔쳐서' 먹는다. 우리는 그 열매를 선악과라고 부르지만, NIV 성경에는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라고 적혀 있다. 중요한 단어는 ‘지식(Knowledge)’이다. 이 열매에는 하나님의 창조 비밀과 크리에이티브 인사이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지되었기에, 인간은 창조성을 얻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훔친다. 그래서 들켰고 낙원에서 추방당한다.
그 결과, 인류 최초의 디자인이 탄생한다. 의류 디자인이다. 나뭇잎을 엮어 옷을 만든 것. 비가 오면 다시 만들어야 했기에, 텍스타일의 디자인과 소재가 발전했을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의 역사는 곧 ‘디자인의 역사’였다. 집을 짓고, 농경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모두가 디자인이다.
그리고 인류의 창조성 최고봉은 ‘바벨탑’이었다. 탑을 세운다는 것은 설계, 건축, 시공, 인테리어, 익스테리어 등 모든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가 결합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긴장하셨다. 명색이 하나님이신데 롯데월드 타워나 두바이의 마천루 정도로 놀라셨을까? 아니다. 진짜 ‘식겁할’ 만큼 잘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탑을 무너뜨리셨다. 하지만 방법이 불이나 물이 아니었다. 바로 ‘언어를 섞어버리는 것’이었다. 즉, 커뮤니케이션을 단절시키셨다. 가장 큰 재앙은 동료, 연인, 가족 간에도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것이었고, 결국 프로젝트는 좌초했다.이것이 크리에이티브 작업의 본질이다. 아무리 멋진 산출물을 만들어도, 대중과 커뮤니케이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크리에이티브 = 디자인 =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크리에이티브의 목표는 결국 소통의 성공이다.

그 이후,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창조 능력을 주셨다. 대표적인 인물이 솔로몬이다. 그는 20대에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연애 시 ‘아가서’를 썼고, 40대에는 자기계발서의 정수인 ‘잠언’을, 인생의 황혼기에는 철학서 ‘전도서’를 남겼다. 그는 작가였고, 창조자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재능을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 훔치려 했다. 훔친 창의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때 명작을 만들었으나 이후 더 이상 창작하지 못하고 사라진 예술가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이 자기거라 착각하며 가졌던 크리에이티브를 결국 하나님이 다시 거둬 가신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몇 해 전,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결정 장애가 왔다. 삿포로에서 저녁을 먹으려 했으나 네 개의 식당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해 2시간을 헤맸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하루에도 수십 가지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결정장애는 파킨슨으로 이어졌다. 몸과 목소리가 떨려서 한달에 다섯번 이상은 하던 광고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하나님이 내 창의성을 거두어 가신 것이다.
결국 휴직을 했고, 무신론자 주제에 기도했다. ‘진짜 존재하신다면, 이거 다 당신 겁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다시 내게 능력을 돌려주셨다. 손의 떨림도 멈췄다. 이번에는 훔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었기에, 더 크고 단단했다. 나는 결심했다. 이 재능을 다시 가져가시기 전까지, 제대로 사용하겠다고. 더 크고 좋은 일에 아쉽지 않게 쓰겠다고. 그래서 글을 쓰고, 노래 가사도 쓰고, 광고를 계속 만들수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케팅, 광고영업, 디렉팅, 카피라이팅, 글쓰기, 영상만들기, 프로그래밍, UI, UX? 다 본질은 아니다. 진짜 크리에이티브란, 신의 창조성을 따라가는 일이다. 남들과 똑같은 영화를 보고, 똑같은 맛집을 다니면서 창작자가 될 수는 없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것은 ‘아니요, 틀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이기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최선을 다한 작업이 빛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크리에이터가 되겠는가?
Hollies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가 흐른다. 그래도 뭔가 방법은 있을것이다. 우린 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각오가 되었다면 들어보시라. 형제들.
올드맨의 이야기를.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스무 살때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의 카피와 광고를 담당한 이후, 30년 가까이 전 세계 광고회사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Cosmopolitan. Writer. Advertising Creative Director. Created hundreds of advertising campaigns and written three books. One of them was made into a 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