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고에서의 음악은 변신 로봇입니다", 작곡가 임선

[인터뷰] "광고에서의 음악은 변신 로봇입니다", 작곡가 임선

  • 최영호 기자
  • 승인 2021.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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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최영호 기자] 광고 음악은 CM 송처럼 광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윤활유와 같은 조연이 되기도 한다. 광고 음악은 광고를 세련되게 만들고 완성도를 높이며 기억하게 만든다. 그래서 갈수록 광고 음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광고 음악을 시작한 지 1여 년 밖에 안됐지만, 세련되고 감각적인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임선 작곡가를 만났다. 그는 2013년에 데뷔한 인디밴드 진달래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뮤지션이지만, 겸손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광고 음악을 대하고 있다. 작곡가 임선이 생각하는 광고 음악은 무엇일까?

임선님께서는 어떻게 광고 음악을 하시게 되셨나요?

안녕하세요. 매드타임스 독자 여러분, 저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뮤지션 임선입니다. 저는 미디어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광고에 대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전무합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파라노이드의 김건 감독님께서 진달래밴드의 음악을 듣게 되셨고 음악의 팬이 되어주셨어요. 이후 이노션의 이일호 CD님께서 "본격 자동차 부품 로맨스, 우리, 환생할래요?" 편을 초반에 30여 초의 광고로 기획하셨대요. 그런데 김건 감독님이 그 편을 연출하시게 되면서 작가로도 활동을 하고 있는 한초에게 대본을 의뢰하셨어요. 이후 대본이 발전되면서 2분짜리 장초 광고로 확장되었고 더불어 음악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는데 그때 감독님께서 광고음악까지 제안을 주신 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결국 진달래밴드의 음악이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해준 셈입니다.

광고 음악 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미학의 하이라이트라는 점입니다. 광고계의 사람들을 만나보니 산다, 판다, 그런 표현을 흔히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창작자로서 장사꾼이 된 것만 같아서 스스로 속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셀링이 없이는 존중도 없는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그건 일종의 표현법일 뿐이더라고요. 순수 창작을 하는 독립 아티스트들도 음원을 팔고 싶고 연극배우들도 티켓을 판매하고 싶듯이 판다는 표현이 가진 숭고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치 요식업을 처음 열어서 첫 주문을 받은 감동이라면 좀 비슷한 설명이 될까요. 광고 현장은 불과 같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구현하고 반복된 수정을 해내는 과정, 한 컷 한 초에 쏟아붓는 물량과 집중력의 열정은 그 어떤 영화나 그 어떤 연극 무대의 현장보다도 치열해요. 한 편의 광고를 완성하기 위해 스태프들끼리 소통의 창을 밤낮없이 열어 작업하는 과정은 뮤지컬 한 작품을 끝낸 듯한 소진을 느껴요. 그래서 저는 우리 팀의 광고 음악이 단지 카피 아래 깔리는 어떤 음악이어도 상관없는 단순한 BGM의 수준이 아닌, 2시간짜리 장편영화에서 하이라이트를 가로지르는 삼십초의 OST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사가 생략된 하이라이트, 그리고 그 순간의 감동을 끌어올리는 OST라고 생각하고 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임합니다. 첫주문의 감동을 늘 상기시키려고 해요.

​두 번째로는 배틀력 상승이에요. 수개월 혹은 수년의 작업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완성도 있는 음악이 레퍼런스로 넘어오게 되면 다윗과 골리앗이 생각납니다. AnR과 각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마스터들이 만들어낸 최고 수준의 음원을 레퍼런스로 마주한 저는 마치 물맷돌 몇 개를 쥐고 초라하게 서 있는 다윗처럼 무모하고도 처량한 모습이 되곤 합니다.  최근에 제네시스 디자이너 이상엽 전무님이 출연하신 "[LIVESTREAM] THE GENESIS GV60 WORLD PREMIERE" 제네시스 디자인 필름은 15분 정도 되는 긴 작업이었는데요. 레퍼런스가 쇼팽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존재와 마주 서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틀력이 상승하고 작업 과정 속에서 우리만의 메소드가 생겨납니다. 다윗이 이긴 골리앗처럼 우리가 하는 작업이 어떤 승부를 겨루는 일은 아니겠지만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자존심의 생과 사의 반복 속에서 팀원들 간의 신뢰와 존중이 형성되어가는 일은 축복이라고 여겨집니다.

​셋째로는요. 레퍼런스 없는 환경입니다. 최근에는 감독님께서 레퍼런스을 주시지 않습니다. 작업물에 대한 신뢰인 것 같아요. 광고 업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알아서 만들어 주시라고 하니 시키지도 않은 짓을 더 하게 되더라고요. 그 시키지 않은 짓의 대표적인 예로 최근 아이오닉 편에서는 과거 대한항공의 SM송이었던 'Welcome to my wolrd'를 저희가 자체적으로 레퍼런스삼아 보컬 곡을 창작했었어요. 시사때 관계자들 모두 음악을 좋아해 주시긴 했지만, 아이오닉 편의 미니멀한 콘셉트와 다소 들뜨는 보컬 곡이기에 아쉽게 드롭 됐어요. 사실 한두 곡만 작곡해서 보내도 되는데, 레퍼런스가 없다 보니 때로는 8개 9개도 만들어서 보내곤 합니다. 감독님께서 창작자 등골 빼는 큰 그림을 그리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십오 분, 이십 분짜리 긴 필름에서는 기획 단계에서 음악이 전체 광고의 핵심 키워드가 되기도 합니다. 레트로한 작업을 하기 전에 경성음악이랄지 LP 사운드 등 음악의 감성을 기획의 첫 줄에 넣으면서 음악의 감성이 필름의 방향성을 정하게 되는 상황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광고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광고에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에게 있어서 광고란 스킵해야 하는 영역이었어요. 유튜브든 텔레비전에서든 심지어 라디오에서도 잠시 광고가 있겠다는 안내가 나오면 기다리기 싫어져서 한숨을 크게 쉬곤 했습니다. 아마도 광고계 종사하시는 분들 외에는 광고란 껄끄러운 기다림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서 향수와 정서를 건드리는 광고들이 제게도 존재하더라고요. 그런 광고들 중에는 대부분 늘 문학이나 서정성이 담겨 있거나 혹은 해학과 즐거움이 담긴 다양한 장르의 매력적인 음악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광고에서 음악은 잘 들려야 하거나 혹은 들리지 않아야 하겠죠. 때로는 들리는 듯 안 들려야만 하거나 안 들리는 듯 들려야 하기도 하구요.

음악 없이 효과음으로만 BGM을 대신하거나, 아예 엠비언트 로만 채우며 음악이 없기도 합니다. 음악이 없거나 적다고 해서 광고의 기능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필름이 가야 하는 목표치마다 음악은 존재와 무존재를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줄의 카피를 읽는 목소리도 어떻게 보면 운율이 있는 랩일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것도 음악이겠지요. 따라서 광고에서의 음악은 변신 로봇의 역할인데 투명도가 유연하게 조절되는 변신 로봇과 같은 역할 말이에요. 대신 절대 지지 않는 아주 싸움을 잘하는 로봇이어야 되겠죠?​

광고 음악을 작곡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로 중요하다고 전달받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듣고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뭐가 중요한지 발주자도 모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땐 진짜 답도 길도 안 보이는데요. 그 작업조차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처럼 여기려고 해요. 헤메는 매력이랄까요. 즐거움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셋째로는 하모니의 정수입니다. 영상보다 음악이 더 잘 보여서도 안되고 메시지보다 음악이 더 중요하게 들려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각각의 트랙들이 똘똘 뭉쳐서 함께 빛나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눈 감고 던져서 다트 정중앙에 맞히는 것이 고수라면, 다트 판의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으로 던져서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정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통, 즐거움, 하모니.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임선님의 대표적인 광고 음악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두개를 말해도 될까요? 첫 발주였던 현대모비스 "우리 사랑할까요"가 첫 번째로 기억에 남습니다. 천재적이라 느껴졌던 이일호 CD님의 기획과 최한초 작가의 감성적인 글, 그리고 김건 감독님의 글로벌한 영상미에 저와 박승준 감독의 음악이 담길 수 있었던 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같은 작업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기에 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상엽 전무님을 담은 제네시스 디자인 필름 "[LIVESTREAM] THE GENESIS GV60 WORLD PREMIERE"인데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창작자가 마스터피스를 뽑아내기 위해 삶도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상엽 전무님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태프들은 광고주를 대하는 것이 사실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상엽 전무님 만큼은 스태프들과도 격 없이 대해주셨고 작품에 참여하는 열의가 순수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한 단어 한 단어 내레이션을 읽으시고 오랜 시간동안 열정적으로 준비하시던 모습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습니다. 수년간 고민하며 만들어낸 제네시스의 필름에 고작 한 달여의 작업으로 완성된 우리 음악이 과연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맞는 것인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광고 음악을 제작하면서 광고의 주체인 프로덕트가 생산되기까지의 많은 사람의 오랜 노고를 반드시 기억하며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겸허함을 주는 시간이었어요.

광고 이외에도 많은 음악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하셨던 프로젝트와 최근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가장 최근에는 MBC와 월드비전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World is one" 콘서트에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인 'man in the mirror'를 편곡한 프로젝트인데요. 세계적인 코러스 시다 가렛, 그리고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김세황 님과 기타리스트 오리안 님, 그리고 마마무의 솔라 님의 목소리로 함께 작업했던 것,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었다는 점이 매우 기억이 남네요. 해외의 내로라 하는 작업자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는 진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애국하는 기분도 느끼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같이 활동하시는 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희는 센티멘탈이라는 광고 음악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진달래밴드의 모든 멤버들이 함께 센티멘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감성이 9할인 최한초가 대표자인 만큼 회사 이름도 센티멘탈입니다. 그리고 저는 액추얼라이징(작곡)을 담당하고 있고요. 박승준은 이성과 정리와 아카이빙을 담당합니다. 그 와중에 오케스트레이션 편곡까지 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제일 중요한 핵심 멤버는 박승준 감독이 되겠네요.  ​

임선 작곡가, 최한초 대표, 박승준 감독 (왼쪽부터)
임선 작곡가, 최한초 대표, 박승준 감독 (왼쪽부터)

우리나라 광고 음악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아쉬운 부분이 있거나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광고 음악을 일 년 밖에 안 한 제가 감히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기존의 곡이 아닌 새로운 곡이 광고에서 사용된다면, 광고의 창작이 더 밀도있어질 것 같아요. 그러면 광고에서 음악이 마치 애플 광고처럼 그 자체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뮤지션 중에도 글로벌한 광고의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인재들이 계속해서 나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예술성은 이미 세계적이라는 것을 수많은 아티스들이 세상의 곳곳에서 증명하고 있잖아요.  작업자가 자신의 작업에 대한 몰두가 깊어질수록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 영글수록 작업의 한계는 점점 없어지고 구현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명해지거나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힘이 오래오래 창작을 유지해줄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광고 음악을 창작하게 되면서 한 광고 음악 제작자가 30초짜리 광고 음악의 마스터링 비용을 몇백만 원을 청구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0" 하나를 붙여서 잘못 들었다고 해도 큰 금액이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마스터링을 잘하는 작업자도 오 분, 육 분짜리 음악에 적은 금액으로 최고의 마스터를 뽑아주는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마스터링을 하기에 에비로드보다도 더 비싼 돈을 받았는지 금시초문이고 궁금했습니다. 어느 현장에서든지 과장과 오해는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묵묵히 성실과 정직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는 고결한 창작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 속에서 빛나는 아티스트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반드시 한 번쯤은 꼭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계획은 '진달래밴드 앨범을 만들자'이긴 하지만, 사실상 무계획이 계획이긴 합니다. 계획을 좀 세워보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거고요. 새로운 일을 만날 때마다 늘 새롭게 조율된 초심으로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 평생 계획이 될 것 같습니다. 로큰롤은 러브 앤 피스잖아요. 사랑과 평화가 변치 않는 것이 저의 매일 계획입니다.​

 

임선 작곡가

  • 현대 제네시스 GV60 월드 프리미어 광고 음악 작곡
  • 현대 아이오닉5 USP 필름 음악 작곡 / TVC 광고 음악 작곡
  • 유아인 X 무신사 TVC 광고 음악 작곡
  • 현대모비스 브랜드필름 광고 음악 작곡
  • 기아 소넷 TVC For Indonesia
  • 차란차 도이치오토월드 TVC 광고음악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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