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참회의 순례 (Pilgrimage of Penance)

[신인섭 칼럼]참회의 순례 (Pilgrimage of Penance)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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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티칸 뉴스
출처 바티칸 뉴스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아직 진행 중인 미국 연방 수사국 FBI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저택을 수색했을 때 나온 말이 있다. 트럼프는 서류를 찢어서 변기 속에 버려 변기가 막혀 수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기에 역사를 흘려보내서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자난 7월 말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캐나다를 방문했는데 “참회의 순례(Pilgrimage of Penance)"라 불렀다. 이유인즉 19세기에 캐나다 정부가 관리하던 기숙 학교 자리에서 최근 수많은 어린이 유해가 발견된 사건이 일어났다. 조사한 결과 당시 정부의 지시로 원주민 자녀들을 강제로 입학시켜 “동화(同化)” 교육을 실시했는데, 이런 학교의 70%는 가톨릭 교회가 관리했다는 것이다.

2015년에 캐나다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ttee)는 캐나다 원주민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문화적 대학살 (Cultural Genocide)>과 같다는 문서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문화적 대학살>은 원주민의 정부를 제거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무시하며 <동화 과정을 통해 원주민이 법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주체로 캐나다에 존속할 수 없도록> 한다는 원주민 말살 정책임이 밝혀졌다. 어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계획적인 말살 정책을 가리키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유태인 대학살을 지칭하는 말을 캐나다의 원주민에 대한 정부 정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가장 심한 후회와 자책의 목소리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소탈하고 솔직한 프란치스코 교황답게 그는 원주민에게 기독교인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겸허하게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는 사과의 말을 했다. 교황의 말씀은 전혀 꾸밈이 없었다. 아마도 이런 말을 교황이 한다는 것은 얼마 전만 해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원주민은 캐나다에만 사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도 여러 부족의 원주민들이 흩어져 보호 구역 (Reservation)에서 살고 있다. 약 550만 명의 원주민들은 550여 개 부족으로 등록되어 있다. 토착 미국인 (Indigenous American), 미국 인디언 (American Indian), 혹은 최초의 미국인 (First American)이라 부르고 있는데 건국 246년인 미국 역사보다는 수소 배, 수천 년 혹은 그 이상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Indian이라는 호칭은 콜럼버스가 잘못 부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지만, 이제는 지울 수 없는 말로 정착했다.

흔히 말하는 인디언, 부족 (Tribe), 보호구역이란 말은 어폐가 있는 표현이다. 인디언이란 말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표현이며, 모두 알 듯이 그가 처음 발견한 땅은 인도가 아니고 신세계 미국이었으니 잘못된 말이다. 보호구역이란 말도 문제가 있는데,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의 고향을 내쫓고 빼앗은 땅을 보호 구역이라니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부족이란 말은 대개 지도자(추장)가 있고 사회 운영 체제가 있으며 글은 없으나 말이 있는 공동체는 국가이지 부족이라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역시 역사가 지은 말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 570여 개의 부족 가운데 두 부족이 남긴 표현들이 있다.

아니시나아베 (Anishinaabe) 부족이 남긴 말

  • 가난은 부정직보다 문제가 덜 하다.
  • 아무도 그대의 양심을 대변할 수는 없다.
  • 사람들이 믿는 것은 진실이다.
  • 달콤한 뿌리라고 해서 다 달콤한 풀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 우리 대다수는 우리 자신의 눈에 비치는 만큼 남들에게 잘 생겨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미군 헬리콥터의 이름, 아파치(Apache) 부족의 말이다.

  • 이 세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 힘이 있다.
  • 잘생긴 녀석은 얼굴만 그저 그럴지 모른다.
  • 거짓말쟁이의 말을 듣기는 더운물 마시기와 같다.
  • 침묵조차도 일종의 기도가 될 수 있다.
  • 사랑이 군림하는 데서는 불가능한 것이 달성될 수도 있다.
  • 나는 바람이 거침없이 불고 햇빛을 가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에서 태어났다.
  • 입안에 천둥소리는 줄이고 손에 번개를 많이 쥐고 있는 게 더 좋으니라.
  • 잘생긴 소년 그저 얼굴만 그런 것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아파치 영토를 계속해서 잠식해 들어오는 멕시코와 미국을 상대로 투쟁한 미국 원주민의 뛰어난 지도자 제로니모의 말 하나 더 한다.

  • 나는 우리가 전혀 없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디서 많이 듣던 성인의 말씀과 같기도 하다. 역설적인 것은 이 모든 말들이 영어로 되어 남아 있다는 일이다.

일본에 거의 반세기나 농락당한 우리, 나이가 90을 넘은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겪은 일들, 순사가 온다고 하면 울던 애도 울음을 그친다는 말, 성을 바꿀 놈이라는 욕이 있지만 성을 두 글자로 바꾸어야 하고 때로는 이름까지 바꾸어야 하던 기억, 교회를 빼앗아 일본군 무기 군수품 창고로 하고, 쇠가 귀한 군수품이라 해서 교회 종과 놋그릇을 바쳐야 했던 일. 15세 어린 학생 잡아다가 사상범이라고 물고문하던 일, 패전 1년 전의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말 하는 사람에게는 기차표 팔지도 않고 살 수도 없던 서러움... ‘문화적 말살 정책‘은 우리도 겪었다.

역사란 잊어서도 안 되고 지울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참회의 순례’는 더욱 뜻깊다. (미국 원주민에 관한 글은 서울 외국어 대학 영문과 명예 교수 신명섭 박사의 글을 인용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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