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숨은 이야기 - 한국 광고 시장 개방 찬반론

[신인섭 칼럼] 숨은 이야기 - 한국 광고 시장 개방 찬반론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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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3년 4월 지금의 한국광고총연합회의 월간 <광고계 동향>의 요청으로 내가 썼던 글의 일부이다.

나는 1996년 6월 한국이 주최해 크게 성공한 제35차 IAA(국제광고협회) 세계 광고대회(서울)가 끝난 뒤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로 광고, 홍보를 맡아 강의하고 있었다. (이 대회 때 나는 사무총장이란 감투를 쓰고 있었다.)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1984년 6월 18~21일에 서울 힐튼 호텔에서는 한국이 처음으로 주최한 제14차 아시아광고회의가 개최되었다. 대성공이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광고 산업이 아시아 시장에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리고 돈도 조금 벌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광고협의회는 적선동에 작은 사무실도 마련해서 집 없는 설음을 면했다.) 많은 대표 가운데는 미국광고회사협회 (흔히 쓰는 준말 AAAA) 회장도 있었고, 세계적인 광고 전문 주간지 Advertising Age 편집자도 연사로 와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은 처음이었고, 듣기만 하던 경이적인 한국 경제 성장과 경제 못지않은 경이적인 광고 성장을 보고 놀랐다.

만사가 그렇듯, 성공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 한국 광고 시장 개방 문제가 떠올랐다. 1980~1987년 한국 광고비는 2,783억 원에서 9,274억 원으로 256%나 증가했다. 성장률은 1985년이 최하로 8.5%, 3개년은 10%대, 2개년은 20%대, 그리고 30%가 넘은 해가 2개년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숫자였다. 그런데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광고시장이 완전히 닫혀 있는 시장은 한국뿐이었다. 1987년의 한국 광고비 9,274억 원은 그 해 미국 달러 환율 기준(US$1.00=792.4원)으로는 11.7억 달러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이었다. 서울의 아시아광고회의가 끝난 두 달 뒤 Advertising Age 사설에는 한국 광고시장 개방 반대를 반대한다는 사설이 실렸다. 그리고 이듬해 85년 9월에는 주한 미 상공회의소가 공개한 한국 시장 개방 요청 가운데 광고 시장이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한편 Advertising Age 1985년 4월 21일 호에는 한국의 10대 광고회사 취급액 자료가 발표되었는데 제일기획은 7,800만 달러, 9위 금강기획이 1,080만 달러이고, 10위 삼희기획만이 1000만 달러 이하로서 870만 달러였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의 이런 취급액은 적은 것이 아니었다. 한편 한국 광고대행사들은 앞다투어 미국 광고대행사와 업무제휴를 하고 있었다.

시장 개방 요구를 보도한 조선일보 1985년 9월 17일 기사. Advertising Age 1984.8.6. 사설 및 한국의 10대 광고회사 취급액.
미국의 시장 개방 요구를 보도한 조선일보 1985년 9월 17일 기사. Advertising Age 1984.8.6. 사설 및 한국의 10대 광고회사 취급액. (왼쪽부터)

미국 측의 한국 광고 시장 개방 요구가 표면화되자 한국 광고산업을 대표하는 광고협의회와 광고대행사 단체인 광고업협회는 대대적인 시장 개방 반대 운동을 전개해서 정부와 국회 등에 “(광고 시장) 개방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나”라는 서류를 보냈다. 6 가지 주장 가운데 5번째 '오히려 가중화될 외채 부담'에서는 광고 대행에서 얻은 “이익을 소중한 외화로 송출할 것이어서 현재 심각한 외화 부채를 가중시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광고 시장 개방은 드디어 정부 간 이슈가 되어 미국 무역대표부의 요구로 나오게 되자 경제기획원과 청와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87년에 공보처에 창설된 광고정책과의 요청으로 내가 정책과장과 함께 경제기획원 담당 국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경제기획원의 초점은 광고 시장이 개방되면 얼마나 많은 달러 화가 나갈 것이냐였다. 한국 광고 시장 규모가 10억 달러를 넘으니 언뜻 생각하기에는 수천만 달러의 외화가 미국 광고대행사 이익으로 나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간단한 도표를 종이에 준비하고 설명했다.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의 광고비 (1987): 9,724억원 ($11.7억)

2. 광고대행사가 대행할 추정 광고비. 총광고비의 80%: 9,724억원 x 80/100=7,779억 원

3. 한국과 외국 광고대행사 지분을 50:50으로 전제한 경우, 외국 대행사 대행액: 7,779억원 x 50/100=3,890억 원

4. 외국 광고회사의 수입. 국제 관례인 대행사 수입(Revenue)은 취급액의 15% 기준: 3.890억원 x 15/100=584억 원

5. 월가에 상장한 미국의 대형 광고대행사의 연말 결산(K-10)에 나오는 세후 이익률(Profit): 수입(Revenue)의 5%: 584억 원 x 5/100=29억 원 (US$366만)

※ 비고 : 1987년 한국의 수출: $482.8억

임의로 전제한 조건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광고비 가운데 대행할 수 있는 비율을 총광고비의 80%로 한 것과 둘째는 외국 광고대행사의 지분을 50%로 한 것이었다. 당연히 질문이 있었고, 설명이 필요했다. 면담은 아마 90분쯤이었을 것이다. 뒤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청와대 설명은 30분에 끝났고, 광고시장은 개방되었다. 1987년에 부분 개방 (49%). 1991년 100% 개방이었다.

얻은 교훈이 있다. 여섯 가지 개방의 문제 가운데 핵심은 다섯 번째 “소중한 외화” 유출인데, 시장 개방 반대 주장에는 그 근거가 의도적으로 감추어져 있거나 모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FACT가 빠져 있었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경제 기획원의 담당관은 나와 1952녀 3월에 임관한 통역장교 10기생이었고 35년 만에 만난 것이었다. 나는 광고시장 개방에 찬성한 외톨이였고 한때 별명 “이완용”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시장이 개방되자 앞다투어 미국 광고회사와 합작하고 뒤에 팔아 버린 사람은 바로 시장 개방 선봉자였다. 역사에는 이런 아이러니도 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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