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15주년 맞는 부산국제광고제, AD STARS→MAD STARS

[신인섭 칼럼] 15주년 맞는 부산국제광고제, AD STARS→MAD STARS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6.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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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2008년 부산국제광고제가 시작할 때 이름은 Busan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s 였다. 길다. 그래 머리글자 넷을 따면 BIAF, 넉 자이다. 그리고 읽기 힘들고 기억하기 힘들다. 연상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 “AD STARS”라 불렀다. 15년이 되어, 이번에는 “MAD STARS”라 한단다. 우리말로 번역하니 “미친 별”이 되었다. 그럼 무슨 뜻인가 했더니 “MAD”는 Marketing, Advertising and Digital이란다. 그럴듯하다. 멋있다.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과 광고이니까. 앞으로 15년 뒤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가장 궁금한 것은 디지털이 100%가 되면, 그다음은 무엇일까이다. 15년 전 일을 돌아보면 어떨까.

광고제, 특히 국제 광고제는 왜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광고의 생명인 창의성(Creativity)을 높이기 위해 한다는 “숭고한”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목적보다는 현실적인 목적이 있는데 돈벌이다. 다른 상은 그만두고 칸 광고제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소유주가 바뀌고 출품 부문이 늘어나니 출품 수가 증가한다. 출품료가 있으니 다다익선이다. 지출이 늘어나니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 그룹 WPP 전 회장 마틴 소렐은 너무 비싸다고 불평을 토로했다.

부산국제광고제는 이 둘째 목표를 무시했다. 출품료는 무료, 스폰서는 부산시 그리고 정부(문체부). 한국 제2의 도시 부산, 그리고 이런 국제적인 문화행사를 스폰서하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일이다. 흔히 말하는 투자 효과 즉 ROI, Return on Investment를 계량할 수 있을까? 긴 설명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이 모든 파격적인 일, 따라서 난관을 뚫고 나간 리더가 있었다. 전 부산의 경성대학교 이의자 교수(집행위원회 위원장)였다. 지금은 뒤를 이은 최환진 교수(집행위원회 위원장)이다. 

나는 2008년에 한림대학교 교수였다. (나도 몰랐는데 부산국제광고제 상임 고문이란 “감투”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왜 광고제에 출품하는가. 상 받기 위해서다. 누가 상을 주나. 심사위원이 결정한다. 따라서 중요한 일은 훌륭한 심사위원을 모셔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심사위원장이다. 

둘째, 넥타이 맨 사람(또는 비슷한 옷차림의 여성)은 심사위원 자격이 없다. 턱시도 입었다고 훌륭한 광고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셋째, 마지막 날 갈라 피티를 제외하고 기타 파티는 생맥주 마시며 너덧 가지 먹을 안줏거리가 있는 곳에서 서서 한다. 정장하고 와인과 샴페인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부산 웨스틴 조선 2층 O'Kim's가 최적지이다. 음악이 있고 생맥주가 있으니. 춤이 있으면 더욱 좋고.

넷째, 총 진행은 국제광고제를 운영해 본 크리에이터이어야 한다. 

다섯째, 아시아 국가에서 주최하는 광고제는 일본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일본 광고계를 움직이려면 반드시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츠(Dentsu)를 움직이는 것이 좋다. 

여섯째, 당연한 일이지만 광고제에 출품하는 조직은 광고회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국적 광고회사는 원칙적으로 국제 광고제 출품은 현지에 맡긴다. 따라서 부산국제광고제가 중점을 둘 곳은 뉴욕, 런던, 파리 등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에 진출한 다국적 광고회사이며 그런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움직여야 한다. 

일곱째, 대만과 중국은 같은 나라이나 다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 덴츠 카피라이터 출신인 일본 관서대학 우에조 노리오(植條則夫) 교수에게 일체를 맡겼다. 대만은 한 때 대만 최대의 광고회사 사장이던 토밍 라이(賴東明)의 조언을 받았다.  

무척 고생했다. 2008년 부산국제광고제 첫 회는 성공했다. 29개국에서 3,105편의 출품이 있었다. (한국 출품이 많았다.) 2012년 5회째에는 57개국에서 10,431편이 출품됐다. 73%가 외국 출품이었다. 그 뒤 출품은 2만 편이 넘었다. 첫해 심사위원장은 에스더 리(Esther Lee)가 맡아 주었다. 한국인 부모를 둔 한국계 여성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녀는 내가 태어난 이북 고향 초등학교 한 해 선배인 이덕희 박사 따님이며, 구한말 애국지사 이갑李甲의 손녀가 된다.) 그녀는 코카콜라 광고 총책임자를 5년이나 지낸 저명한 광고인이며, 글로벌 크리에이티브를 직접 지휘한 베테랑이었다. 에스더는 이 밖에도 한 일이 무척 많다. 백인 숭앙에 젖은 사람에겐 작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긴 이야기는 이만한다. 2008년에서 15년 사이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었다. AD STARS는 이제 MAD STARS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국제 광고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출품자, Young Star 참가 대학생, 온라인 예심, 본심, 그리고 부산에 와서 참가한 사람 등 지난 15년 누계는 아마도 수십만 명이 될 것이다. 사람과 물고기 냄새가 물씬한 자갈치 시장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그렇게 훌륭한 자산“인 자갈치 시장 안내가 없다고 투정하던 프랑스인, 유럽 CF 제작 PD 연맹 회장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프랑소와 실롯(Francois Chilot)이었다. 그는 국제광고제에서 이기려면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고 있었다. 

180 페이지의 입상작 책자와 기록을 더듬은 15년 전 사진 몇 장이 있다.

에스더 리 인터뷰. 부산일보. 2008.10.21.
에스더 리 인터뷰. 부산일보. 2008.10.21.
총진행을 맡은 고든(Gorden. 중앙)과 신인섭
심사위원 후루카와(古川, 덴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신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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