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Juneteenth Independence Day, Freedom Day, Emancipation Day... 1865년 6월 19일 드디어 350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 해방된 날

[신인섭 칼럼] Juneteenth Independence Day, Freedom Day, Emancipation Day... 1865년 6월 19일 드디어 350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 해방된 날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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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하는 바이든 대통령. 자료: Gallup. June 16, 2022. Public's Understanding of Kineteenth Has Grown Since 2021
서명하는 바이든 대통령. 자료: Gallup. June 16, 2022. Public's Understanding of Kineteenth Has Grown Since 2021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미국 남북전쟁은 1861년 4월에 시작되어 1865년 4월에 끝났다. 미국 전쟁 역사상 가장 많은 61만 8,222명(북군 360,222, 남군 258,000)의 전사자를 낸 뒤였다. 아직 전쟁 중이던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은 유명한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그 결과 주로 남부 여러 주에 있던 350만 명의 노예가 해방되었다. 대통령이 서명한 문서였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선언이 현실화한 것은 2년 반이 지난 1865년 4월 9일 남군 2만 8천 명 장병의 사령관 로버트 E. 리 (Robert E. Lee) 장군이 북군에 항복한 뒤였다. 그리고도 다시 두 달 열흘이 지난 6월 19일이 기념일이 된 것은 리 장군 항복이 알려진 뒤였다. 이날 북군의 장군 고든 그랜저 (Gordon Granger)가 텍사스 갤베스톤(Galveston)에 와서 전쟁은 끝났고 흑인 노예는 해방되었다는 선언을 알리고 난 다음이었다.

Emancipation Proclamation 95. Wikipedia
Emancipation Proclamation 95. (출처 Wikipedia)
화가 Henry L. Stephens. 1863. Presidential Proclamation 이란 제목의 신문을 읽고 있는 흑인
화가 Henry L. Stephens. 1863. Presidential Proclamation 이란 제목의 신문을 읽고 있는 흑인 (출처 Wikipedia)
노예 해방 선언문 (첫 페이지)
노예 해방 선언문 첫 페이지 (출처 Wikipedia)

링컨의 노예 해방선언이 발표된 지 1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2년 전 2020년 5월 25일, 37세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 (George Floyd)는 20달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고 의심을 받아 백인 경찰에 체포되어 목과 등에 9분 29초 동안 무릎을 꿇려 질식사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듯했다.

한 흑인 학살 소식은 인종 차별 소식이 되어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전 식민 종주국 여러 곳에서 인종 차별의 역사 찾기와 바로잡기는 운동이 되었고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다. “숨을 쉴 수 없어 (I Can't breathe)"란 그의 임종 때 한 말은 슬로건이 되었고, 흑인 목숨도 귀합니다 (Black Lives Matter)는 머리글자를 딴 ”BLM“이란 새로운 줄인 낱말이 되었다.

2021년이 되었다. 작년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 흑백인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Juneteenth를 연방 공휴일로 정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서명을 지켜 보는 사람 가운데는 인종이 “흑인”으로 되어 있는 인도/자메이카 출신 카밀라 해리스 부통령도 있었다.

"Juneteenth"란 말은 드디어 미국 연방 공휴일이 되었다. (우리와는 달리 연방 공휴일은 연방정부 직원에게만 해당되며, 모든 주정부 법이 통과되어야 전국의 공휴일이 된다.) 대통령이 법령에 서명해서 흑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회사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년 전 2021년 5월과 올해 5월 미국 공립학교에서 Juneteenth 교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비율은 49%에서 63%로 증가했다.

나는 1950년대 초 논산 훈련소에서 소장(그리고 수석고문) 통역장교였다. 그 시절 작전(G3)과 고문관이던 흑인 중령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식이 없었다. 왜? 자기가 겪은 참기 힘든 흑인 차별 같은 고통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 말은 잊지 않고 있다.

차별은 피부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별은 우리 주변에 지금도 수두룩하다.)

제44대 미국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그리고 그의 부인)은 흑인이다. 이미 말한 대로 지금 미국 부통령도 역시 흑인이고 첫 여성이다. 미국은 그런 나라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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