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고(古)인쇄박물관' 주최 한국 광고 전시회가 주는 시사

[신인섭 칼럼] '고(古)인쇄박물관' 주최 한국 광고 전시회가 주는 시사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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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청주 고인쇄 발물관 특별전 "광고. 시대를 보다"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청주의 고인쇄 박물관이 한국의 광고 역사를 전시회의 주제로 삼은 일은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다. 지난 반세기 사이에 변해온 우리의 광고에 대한 인식을 살피면 나타난다.

한국에서 광고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기구는 문화관광체육부이다. 정부 기구 가운데 중앙정부 조직에 광고 관련 과(課)가 설립된 것은 1987년으로 광고정책과라는 이름이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까지 광고 관련 국제회의에 가기 위해 여권 신청을 하면 여기저기 정부 부처를 돌아다녀야 했다. 주무 부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한국광고총연합회가 한국광고대회와 한국광고상을 주관하게 된 것은 1987년이었다. 이날 문화공보부 장관 축사에는 흥미 있고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 신문광고가 등장한 지도 작년으로써 100년이 넘었으며(1886년 한성주보에 게재된 독일 세창양행 광고 기준-필자 주) 방송광고가 시작된 지도 4반세기를 이미 넘었습니다. 지난 1세기에 걸친 우리 광고의 개척사를 되돌아볼 때 그동안의 많은 역경과 시련, 그리고 사회 일반의 광고에 대한 몰이해를 끊임없이 극복해 온 광고인 여러분의 노력을 참으로 값진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한 나라의 광고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최고위 관리가 이처럼 간결하게 광고에 대한 인식을 언급한 일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회 일반의 광고에 대한 몰이해>가 한국의 상황이었다. 광고인이 정부가 주는 포상 대상에 들어간 것은 1992년이었다. 대학에서 4년제 광고 전공학과가 탄생한 것은 1974년 중앙대학이 처음이었으며, 그 뒤 1990년대에 여러 대학으로 확산됐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광고대행업을 맨 먼저 시작한 사람(기록이 남아 있는)은 두 미국인이었는데, 1960년대 중반이었다. 사실상 한국에 광고대행사 시대가 개막한 것은 1960년대 말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그리고 호남정유(지금의 GS 칼텍스)가 한국에 진출하여 콜라와 석유 시장 경쟁이 본격화한 이후였다.

"광고 시대를 보다" 책자 가운데 있는 동화약방 활명수와 유한양행 네오톤의 컬러 포스터
"광고 시대를 보다" 책자 가운데 있는 동화약방 활명수와 유한양행 네오톤의 컬러 포스터
같은 책 가운데 있는 청주시 발행 1936년 4월 9일자 일본어 신문 중선일보(中鮮日報) 기사. “Make-up 청주 시가. 각종 호재료로     활기 넘치는 청주“란 머리 기사이다.
같은 책 가운데 있는 청주시 발행 1936년 4월 9일자 일본어 신문 중선일보(中鮮日報) 기사. “Make-up 청주 시가. 각종 호재료로 활기 넘치는 청주“란 머리 기사이다.

한국 신문광고의 효시인 독일 세창양행 광고가 한성주보 1886년 2월 22일 4호에 게재된 것을 찾아낸 사람은 당시 서강대학 신문방송학과 유재천 교수였고, 1975년 중앙일보 창간 10주년 기념 연구였다. 즉 한국의 첫 근대 광고를 찾아낸 사람은 언론학 학자이며, 광고 학자는 아니었다.

한국 광고의 역사에 관한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신인섭의 <한국광고발달사(韓國廣告發達史)>인데, 1980년에 발간되었다. 1876년 강화조약 이후 한국에 광고가 정착한 이후의 각종 광고에 대한 연구 시작은 이 책이 나온 뒤 확산됐다. 신인섭의 한국 광고발달사는 그 뒤 2011년까지 세 차례 개정되었는데 이름은 <한국 광고사>로 바뀌었다.

한국의 신문 역사에 관한 글이 17회에 걸쳐 <조선신문소사(朝鮮新聞小史)>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 1935년 7월 6일~26일 사이에 17회 연재되었다. 글은 쓴 사람은 안재홍(安在鴻), 필명 민세학인(民世學人)이었다. 저명한 안재홍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의 신문 역사와 광고 역사 연구의 시작에는 45년의 격차가 있다.

민세학인(民世學人. 안재홍). 조선신문소사(朝鮮新聞小史). 1회. 1935.7.6
민세학인(民世學人. 안재홍). 조선신문소사(朝鮮新聞小史). 1회. 1935.7.6

한국언론학회는 1959년 6월 30일에 창설되었다. 한국광고학회 창설은 1989년 10월 14일이니 40년 격차가 있다. 오인환 문화공보부 장관의 1987년 한국 광고에 날 기념식 축사에서 한 말 “광고에 대한 몰이해”란 이런 것에서 그 원인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2016년에 7월 말부터 4개월간 한글박물관은 <광고 언어의 힘>이란 전시회를 주최했다. 우리 말과 글을 다양한 각도에서 풀이한 이 전시는 광고를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던 입장에서 더 넓게 우리 말, 글의 변천과 우리의 삶을 살펴보는 각도에서 연구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글박물관은 2020년에 문자혁명 관련 전시와 아울러 <문자혁명>이란 연구서를 발행했다. 그 표지에는 <문자혁명-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다. 그리고 목차 앞에는 “글자 하나가 천금과 같으니 글자를 마땅히 금같이 아낄지니라”라는 경석자지문(敬惜字紙文)이란 개화기(1882)에 출판된 책에서 따온 말이 있다. 목차 첫 장이 “독점에서 공유로”이며 ”신을 향한 문자로부터“가 첫 제목인데, 그다음에 나오는 그림에는 불경을 받아 손으로 쓰는 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과 통하는 면이 있다. 불경을 받아쓰려니 인쇄한 불경이 있어야 보고 쓸 것이고, 책을 인쇄해서 만들려니 금속활자가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백운화상의 <직지>가 떠오른다. 글자 하나가 천금과 같다는 말 그리고 ”독점에서 공유로“가 대두된다. 이렇게 볼 때 금속활자가 한 일은 단순히 활자만의 일이 아니고 훨씬 광범위한데 종교 및 독점에서 공유로 더 나아가 사람들이 서로 통하는 수단으로서의 책과 활자로 확대된다.

작년 유엔총회에서는 한국의 BTS가 극히 드물게 UN 총회 회의장과 주변을 돌며 촬영한 3분 43초짜리 영상물을 제작했다. “Permission to Dance” 란 제목의 이 영상은 UN 창립 이래 처음으로 UN 빌딩 안팎을 누비며 촬영이 허용된 특전이었다. 물론 UN의 이 영상물은 세계 평화의 전당으로 엄숙하고 진지한 이미지를 트렌디한 UN으로 온 세계에 알리는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BTS는 <방탄소년단>을 영어 약자로 만든 말이며, 7명 모두 20대 한국 청년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세운 전당 UN의 이미지 메이킹을 한국의 BTS가 맡아 할 만큼 한국은 달라졌다. 아무도 이것을 광고, 선전, PR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널리 알렸다. 그리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음을 UN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광고는 21세기에 들어온 뒤에 엄청나게 변했다. 양과 질 면에서 변했고, 광고에 대한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계량화된 자료는 없다.)

다만 광고가 제 대접을 받으려면 아직 할 일은 많다. 산더미처럼 많다. 광고의 핵심이라는 크리에이티브, 디자인과 카피, 광고 매체, 규제, 제도, 연구, 개화기,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 등 파고 밝혀야 할 분야는 수두룩하다. 서두르기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광고와 홍보 관련 학회는 여럿 있다. 아마도 이 여러 학회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5년, 10년 또 그 이상 해야 할 일은 전문 분야를 나누어서 차곡차곡 연구를 쌓아 갈 때 뿌리 깊은 나무가 될 것이다.

오인환 장관이 35년 전에 말한 것처럼 “사회 일반의 광고에 대한 몰이해를 극복“할 길은 광고에 종사하는 광고인 그리고 특히 광고 학자들이 몰이해의 원인을 파악해서 제거해야 될 것이다. ”몰이해“란 점잖은 표현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은 고사하고 심지어 언론계에서조차 몰이해보다 더 낙후한 인식의 일단이 구석구석 남아 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박병선 박사의 집념과 땀이 열매를 맺어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전에 이미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UNESCO가 인정했다.

청주에 있는 <고인쇄 박물관>의 작년 한국 광고사 전시는 이런 시사를 준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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