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개화기 민 충정공(閔 忠正公) 부고는 나라 사랑, 정치 메시지였다.

[신인섭 칼럼] 개화기 민 충정공(閔 忠正公) 부고는 나라 사랑, 정치 메시지였다.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1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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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충정공 사진과 동상 (출처 동아일보)
민 충정공 사진과 동상 (출처 동아일보)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1905년 11월 7일은 제2차 한일조약, 을사보호조약 혹은 5조약이 체결된 날이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 통감 정치가 시작되며 일본에 침탈당한 날이다.

11월 30일 시종무관장 민영환은 자결했다. 그가 남긴 유언은 명함에 쓴 그림과 같다.

민영환이 자결하는 날 명함에 남긴 유언
민영환이 자결하는 날 명함에 남긴 유언

1905년 12월 3일에서 10일 사이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는 다섯 개 부고가 게재되었다. 다섯 부고 모두 곡(哭)으로 시작하고 셋은 “민공 영환 영궤 (閔公泳煥靈几)”, 하나는 “만고충신 민충정공 영환 영궤 (萬古忠臣閔忠正公泳煥靈几)”로 또 하나는 “민충정공 영환 영궤(閔忠正公 泳煥 靈几)로되어 있다. 맨 위에 있는 부고에는 최창선(崔昌善)과 잘 알려진 이름 최남선(崔南善) 두 형제의 이름이 있다. 세 광고에는 애도의 글이 있다.

그림의 셋째 단에는 한글로 쓴 조의의 글이 있는데, 이름은 없다.

부럽더라 부럽더라

민 보국 대감 부럽더라

이 대감도 평시에는

별사람이 안이더니

나라 일에 분격하야

일조 단충 일운 후로

장안 백성 우는 소리2022

부모 상을 당하온 듯...

충신 한번 되고 보면

민보국 대감 부럴손가

이 밖에도 자세히 보면 민 충정공의 자결과 관련된 모임에 대한 안내 기사가 이 그림 페이지 두 군데 나와 있다.

부고가 실린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지면
부고가 실린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지면

대한 제국의 군인이요 정치가이며 아울러 국제적 외교관 민영환의 동상은 서울 서대문구 그의 시호인 충정로로 자리를 옮겼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알려진 이 조약은 <을사 늑약(勒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문 글자 “勒(륵)”은 “굴레”나 “억지로 한다”라는 뜻의 글자다.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이 아침 6시 조금 지나 자결할 때, 그의 나이 45세(1861.7.2.-1905.11.30)였다. 이로부터 3~7일 사이에 두, 서너 줄 혹은 네댓 줄의 부고 다섯이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되었다. 이 부고는 민충정공의 장례가 인산인해처럼 되는 애국 메시지가 되었다고 해서 과언은 아닐 것이다.

동아일보는 두 차례나 장소를 옮기다가 2022년 8월 말에 서대문구 충정로 제 자리로 터를 옮긴 민 충정공의 동상을 실었다. “65년 만에 충정로 제 자리로”란 기사와 함께.

부고 (광고)는 때로 나라를 사랑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의 장례 행렬 및 조계사 경내에 있는 민영환 생가 표시 돌
그의 장례 행렬 및 조계사 경내에 있는 민영환 생가 표시 돌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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